이일규 前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
주민 통제할 목적으로 장벽 세우는 '정치 공사'
정전협정 질서에도 도전
2010년 천안함 폭침 때 駐캐나다 北대사관 좌초
정상국가에서 더 멀어져

박정천 북한 국방성 고문이 지난 20일 리일환 노동당 비서, 김여정 당 부장, 인민군 총참모부 주요 지휘관들과 함께 남부 국경 요새화 공사 현장의 주요 지점들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달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가 폭발해 우리 장병들이 다쳤다. 합동참모본부와 유엔군사령부는 이 사건의 원인을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로 결론 내렸다. 북한이 추진하는 ‘국경선 요새화’가 우리 장병의 희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김정은은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했다. 이후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방벽을 쌓고 지뢰를 묻었다. 정치적 단절 선언을 넘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들여 휴전선을 국경처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내부 통제 목적이 크다. 남북의 경제 격차가 벌어지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질수록 북한 주민들은 남한의 현실과 문화를 접하며 체제 선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국경화는 ‘동족’이라는 연결고리를 끊고 한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함으로써 주민들의 이념적 동요를 차단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다. 외부의 침투를 막는 군사 공사인 동시에 주민의 의식에 또 하나의 장벽을 세우는 ‘정치 공사’인 셈이다.
둘째는 대외 안보 환경을 바꾸려는 계산이다. 북한은 체제 안전을 명분으로 핵무장을 추진했다. 그러나 핵이 모든 위험을 제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란 전쟁은 핵보유 고집이 미국의 군사적 압박과 공격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북한은 핵을 보유한 채 군사적 충돌 위험을 낮추고,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얻는 길을 집요하게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국경화는 하나의 카드다. ‘적대적 두 국가’라는 선언과 별개로 MDL을 국경으로 기정사실화하고 기존 정전협정 관리 질서에 도전함으로써, 장차 평화 체제 논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우리 장병이 희생된 지뢰 매설은 용납할 수 없다. 북한은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은커녕 ‘자작극’이라며 적반하장의 주장을 내놨다.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 나오기도 전에 김여정 명의로 담화를 내고, 지뢰 사건과는 무관한 지역의 전술 반격 수단 증강까지 거론했다. 외무성과 김여정이 강경 메시지를 연속으로 내며 사실관계를 따지는 대신 위협 수위를 높였다. 최근에는 DMZ 시찰에 나서며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를 예고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북한의 반박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합참과 유엔군사령부의 현장 조사 및 과학적 감정 결과를 뒤집을 만한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억지와 비난으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두 국가 관계’의 논리로 보더라도 국경선 너머에 지뢰를 매설해 ‘상대국’ 장병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유엔군사령부는 이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판단했다.
김여정의 거친 언사도 감정 표출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같은 사안을 두고 김여정 담화와 외무성의 발표는 표현의 강도가 달랐다. 지도자의 동생 명의로 강경한 메시지를 내면서도 외교 당국은 상대적으로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 향후 협상 여지를 남기려는 역할 분담 전술이다. 북한이 반복하는 막말 속에도 정치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한국을 미국의 ‘하수인’으로 비하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의 상대를 미국으로 좁히고 한국을 배제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대북 정책 기조와는 별개로,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고착하려는 의지가 확인된다.
북한의 DMZ 지뢰 매설과 국경선 요새화가 위험한 이유는 한반도 안보 환경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은 전쟁을 끝낸 국가 간 조약이 아니라 충돌을 멈추고 관리하기 위해 만든 안전장치다. 막대한 무력이 집결된 예민한 지역에서 일방적으로 국경을 선포하면 서로 다른 기준에 의한 충돌 위험이 커진다. 북한이 안정과 평화를 원한다면 이런 위협 행위부터 멈춰야 한다.
2010년 봄 나는 주(駐)캐나다 북한대사관 설립을 위해 캐나다 밴쿠버를 방문했다. 협상 준비를 하던 중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외부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캐나다 외교부가 북한 대표단에 보낸 문건이 놓여 있었다. 당시 벌어진 천안함 사건을 규탄한다는 내용과 함께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과는 대사관 개설 논의를 할 수 없다는 통보였다.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우리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편승한 캐나다의 비겁한 행위를 규탄했다. 한편으론 무모한 도발이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큰 지탄을 받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원숭이는 비단옷을 입혀도 역시 원숭이다’라는 영국 속담이 있다. 북한이 아무리 정상 국가가 되려고 애써도 지금 방식으로는 정상 국가가 될 수 없다. 지도자 가족의 거친 언사가 외교 당국의 공식 입장보다 앞서는 관행부터 고쳐야 한다. 국경을 세운다고 국가의 품격이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경기도 김포시 애기봉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개풍군 해안가 접경지역. '국경선 요새화'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지난 23일 북한군 자주포가 남측을 향해 포신을 겨누고 있다.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인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선전 문구가 보인다. /김지호 기자
출처: 조선일보(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