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애국지사 엄주신

故人의 공훈록 및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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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록(국가보훈처 ‘獨立有功者功勳錄’ 제10권 1992년도 포상자 p.205)

엄주신(嚴柱信, 1890.4.15-1973.8.28)

경남 함안(咸安) 사람이다. 1919년 3월 24일 함안군 칠원면(漆源面)에서 손종일(孫鐘一), 박경천(朴敬天), 윤형규(尹兄珪)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칠원읍 장터에서 800여명의 군중을 규합, 선도하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4월 3일에도 장터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800여 명 시위군중들과 함께 시위를 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다.

이 해 5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1년 국가유공자증서

1992년 표창장

02

상세 약력 및 설명

1890. 04. 15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 728번지에서 嚴順業씨의 次男으로 출생

1909. 10. 03

임명남 여사와 결혼(슬하에 3男 6女를 둠)

1910. 06. 17

방명원 조사로부터 학습

1913. 03. 05

남행리 목사로부터 세례

1914. 03. 20

한의사 면허 취득(면허번호 제483호, 1914.3.20)

1914 ~ 1973

한의사로서 헐벗고 굶주리며 병마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인술을 폄. 해방 前 非위생적인 생활습관으로 인해 ‘이질 · 설사’ 환자가 급증하였을 때 일본 의사에게 치료 받던 환자들은 거의 사망하였으나, 故人에게 치료를 받았던 환자는 모두 살았다. 그리하여 당시 西部 慶南에서는 아주 용한 한의사로 소문이 나 구름 같이 몰려온 數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여 살렸고, 그들에게 복음을 널리 傳하고 또 민족혼을 심어주었다.

1919. 03. 24

당시 30세의 醫生(韓醫師)으로 함안군 칠원면(漆原面)에서 손종일장로(故 손양원 목사 父親). 박경천. 윤형규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문종이(韓紙)는 故人이 의령 신반에서 약봉지를 만든다는 핑계로 다량 구입 공급하여, 태극기를 제작하고 칠원읍 장터에서 1천여 명(倭警 추산 8백여 명)의 군중을 규합 선도하며 시위를 벌였다. 또 4월 3일에도 장터에서 1천3백여 명(倭警 추산 1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시위를 선도하다가 日警에 체포되었다. 同年 5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았으나 ‘내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 어찌 罪가 될 수 있느냐’ 하면서 항소하였다. 그러나 6월 10일 대구복심법원(고등법원) 형사1부에서 기각되어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24. 04. 13

칠원교회당 기공. 일본이 1908년 1월에 삼림법을 공포하고 우리 임야를 독점하기 시작하였고, 1912년 2월에는 국내 山地에 대한 삼림, 임야 및 未개간지의 私有와 國有 구분의 표준을 정하면서 본격적으로 林野資源을 수탈해 갔기에 당시에는 재목을 구하기 어려운 때였다. 심지어 나무뿌리까지 뽑아갔는데 이것을 대동아전쟁 기름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시라 나무를 준비해 두셨던 것이다. 故人이 무릉에서 한의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故人의 밭이랑에 버드나무를 심었더니 그것이 아름드리 큰 재목이 되었다. 모두 40주를 베어 다듬었더니 기둥이 되고 좋은 성전재목이 되었고, 무릉에서 칠원읍까지 약 4km를 걸어 다니면서 교회당 건축을 감독하였고 1925년 4월 26일 입당예배를 드렸다. 한번은 칠원읍에서 무릉으로 夜間에 돌아오는데 山에서 호랑이를 만나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호랑이 눈을 뚫어지게 주시하니 호랑이가 꼬리를 내리고 슬그머니 도망을 갔다는 일화도 있다.(칠원교회사 p.103~104, 칠원교인 口傳)

1933 ~ 1973

교회 장로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 봉사하였다. 故人은 漢學者로 주일 성경공부를 준비하는 열성이 대단하여 일주일 내내 공과를 준비하였고, 주일 성경공부 시간에는 성경을 공부하고자 하는 교인들로 예배당이 가득 찼다. 1957년 11월 전도사로 부임하여 1961년 7월 사임한 담임 임종만목사(고신 증경총회장)도 고정적으로 성경공부 시간에 참석하였다.

1945. 08. 15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을 맞이하여 그 동안 교회 지하실에 깊이 감추어 놓았던 종(鍾)을 종각에 걸고 역사적인 타종을 하며 온 성도가 눈물과 감격으로 하나님께 해방 감사의 예배를 드리다.

1952. 04. 29

대구 서문교회당에서 열린 제37회 총회(총회장 김재석)에서 고려신학교와 그 관계자들(경남(법통)노회)은 총회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총회 측의 재언명과 경남(법통)노회의 엄주신 장로의 고별선언을 최후로 고려학교를 중심한 경남(법통)노회는 총회와 결별하게 되었다(고신총회 홈페이지 고신연혁 中)

1964. 03. 01

함안군수(정명철) 표창

1973. 08. 28

召天. 임종시 자녀손들이 모이자 아주 환한 얼굴로 하늘을 향해 두손을 활짝펴고 천사들이 춤을 추며 나를 데리러 온다고 하면서, 너희들 찬송을 부르라고 하며 만면에 웃음을 뛴 기쁜 얼굴로 후손들의 찬송을 들으면서 召天하셨다.

1992. 04. 13

대통령표창(총무처장관 이상배) 추서

2001. 07. 27

국가유공자(보훈처장 이재달) 추서

2002. 10. 31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No.1015) 移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