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애국지사 엄주신

손양원 목사와 칠원교회

손양원 목사는 1902년 6월 3일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 685번지에서 부친 손종일 장로와 모친 김은수 집사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4년 3월 17일 덕산리교회 시절 이윤종 조사로부터 학습을 받고 1917년 10월 3일 맹호은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919년 3월 23일 칠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중동학교 초등과와 마산 창신학교 고등과를 거쳐 일본 동경 소암중학교를 졸업했다.

1923년 10월 23일 집사로 피선되어 성전 건축에 헌신하면서 1924년 1월 17일 함안군 대산면 옥렬교회 정양순 여사와 결혼했다. 정여사의 본래 이름은 정쾌조이다. 정여사가 손양원 집사 댁으로 결혼하여 왔을 때에 어려움이 많았다. 시부님 손종일 장로와 시모님 김은수 집사, 손양원 집사의 아우 장원, 이원씨 등 많은 식구가 있었으며 특히 교회당을 신축 하느라 가정의 살림살이가 극히 어려웠다.

동인, 동신 군 “밥을 적게 먹는 놈이 효자다”라는 손종일 장로의 말에 아들들이 서로 밥을 적게 먹었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정양순 여사는 부산 방직공장에 취직하여 가정을 도왔는데, 그 때 손양원 집사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서 공부를 하고 1929년 3월 6일 경남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밀양 수산교회, 울산 방어진교회, 울산 남창교회, 부산 감만동교회, 남부민교회, 원동교회를 다니면서 복음 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1936년 5월 26일에 모친 김은수 집사가 별세하였다. 1938년에는 부산지방 선교사 대리로 지방순회를 하다가 평생목회지 여수 애양원교회를 향하여 1939년 7월 15일 부임이사를 했다. 1939년 3월 2일 손양원 목사의 동생 손의원 전도사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므로 칠원교회가 축하를 했다.

그러나 손목사가 신사참배를 반대하므로 여수경찰서에 검속되자 칠원교회는 경찰서에 사식비(私食費)를 보내야 했고(1939. 11. 25) 고등학교에 공부하는 동인이와 동신이에게 학비보조를 해야 했다(칠원교회 80년사 173~176pp)

손양원 목사 묘 앞에서의 칠원교회 성도들

손종일 장로의 장례식 때
(가운데 안경쓰신 분이 손양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