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애국지사 엄주신

엄영악 성도
(엄주신 장로의 여동생)
하와이 결혼이민

1902년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이민사가 시작된 날이다. 정착지는 하와이의 사탕수수농장. 그 해 12월 22일 조선인 121명이 미국 상선 갤릭호(Gaelic)에 몸을 맡긴 채 제물포(인천항)를 떠났고, 20일 후인 1903년 1월 12일, 신체검사에 불합격한 35명을 제외한 86명이 호놀루루항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인천 내리교회 신도들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조선왕조 말기 탐관오리들로 인한 경제적 압박에다, 일제의 대대적인 농지 매입과 식량수탈 등으로 더 이상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된 형편에 1달 일하면 16달러를 받는다는 말에 기회의 땅으로 여겨저 너도나도 이민 대열에 뛰어들었다.

<갤릭호 Gaelic>

그러나 처음 기대와는 달리 하루 12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과 최악의 생활환경이 이들 앞에 놓여 졌으나, 한국인 특유의 인내심으로 잘 견뎌내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처럼 자살을 하거나 소란을 피워 감옥에 가는 일도 없었고, 피땀 흘려 번 돈을 고국의 부모 형제와 독립운동단체에 아낌없이 송금하여 조국 경제에 큰 힘이 되었다.

당시 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준 것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었다. 주일이면 하와이의 한국인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차와 식사를 나무며 교제를 나눈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민자 대부분이 남자들로서 가정을 이루어야겠는데 장가 들 조선 처녀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결혼 한번 하기위해 만 리 밖 한국 땅으로 나온다는 것은 당시 사정으로는 너무도 어려웠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사진결혼’ 하와이에 있는 총각이 사진 한 장을 찍어 보내면 중매쟁이가 사진으로 중매를 서고, 신부가 될 처녀는 달랑 사진 한 장만 들고 하와이로 떠났고, 호놀룰루 항에서 양복 입고 마중 나온 조선인 총각과 사진을 대조해서 만나 교회로 가서 혼인예식을 치르고 평생을 살았는데 이것을 일컬어 ‘하와이 결혼이민’이라고 불렀다. 칠원교회 성도 중에도 9명이 그렇게 하와이로 결혼이민을 갔다.

엄주신 장로 동생 엄영악, 손종일 장로 장녀 손봉연, 김성협 영수 장녀 김순모, 진덕행 집사 질녀 구금순, 임수이, 박연순, 김악이, 김점상, 김점남 등도 하와이 결혼이민에 동참을 하였는데 이들은 훗날 성전 건축 때 적지 않은 돈을 헌금하여 주었다.

[칠원교회 100년사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