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애국지사 엄주신

대구 항소심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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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신(嚴柱信) 지사의 대구 항소심 판결문 韓譯('함안 항일독립운동사' 이규석 저 p.72)

판결문 원본(행정자치부국가기록원 광디스크 원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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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복심법원에 항소한 엄주신(嚴柱信)지사의 판결문을 전재하면 다음과 같다.

[판 결]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무릉리 의생(醫生) 엄주신(嚴柱信) 당30세 상기 외 6명 보안법 위반 피고 사건에 대하여 대정 8년 5월 20일 부산 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피고 엄주신(嚴柱信)을 징역 8월에 처한 판결에 대하여 피고로부터 항소 신청이 있었으므로 당원은 조선총독부 검사 노다구라오가 간여하여 심리를 마치고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주 문]

피고 엄주신(嚴柱信)의 항소를 기각한다.

[이 유]

피고 엄주신(嚴柱信)은 조선 독립의 여망을 달성할 목적으로 원심 공동 피고 손종일(孫鐘一)이 발의한 모의에 동참하여 원심 공동 피고 박경천(朴敬天), 윤형규(尹兄珪) 등 3명과 손잡고 구 한국 대형 태극기 하나와 많은 소형 태극기를 제작하여 이것을 들고 대정 8년 4월 3일 오후 3시경 전기 손종일과 함께 대한 독립만세를 소리 높이 선창하였다.

그리고 엄주신(嚴柱信)은 솔선하여 군중을 선동하였고 선동에 동조한 군중과 합세하여 독립만세를 높이 불렀다. 판시 범죄 사실을 순사부장 세끼조오호가 마산경찰서장 앞으로 대정 8년 4월 4일자 칠원 읍내 소요 사건에 관하여 보고한 보고서에는 ‘4월 3일 칠원 장날 오후 3시 손종일(孫鐘一)이 선두에서 대형 태극기를 치켜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외쳤고 엄주신(嚴柱信), 박경천(朴敬天), 윤형규(尹兄珪)를 비롯한 수명의 선동자가 이를 뒤따라 독립만세를 불렀기 때문에 시장에 모였던 사람들이 뇌화부동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했으므로 경찰은 군인의 지원을 받아 진압에 나서 시위 군중을 일시 해산시키었다. 그러나 오후 5시경이 되자 또다시 6백명의 군중이 운집하여 만세를 부르면서 태극기를 치켜세워 읍내를 누볐다’는 요지의 기록이 있었다.

검사의 피고 손종일(孫鐘一)과 피고 엄주신(嚴柱信)에 대한 신문조서에서도 이를 시인하므로 만세 운동의 구호 전단은 몰수한다. 피고에 대한 부분의 전기 사실과 동 취지에 나타난 원 판결은 지당한 것으로 피고의 항소는 이유 없다. 따라서 형사 소송법 제261조 제1항에 준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정 8년 6월 10일
대구복심법원 형사 1부
재판장 조선총독부 판사 竹眉義曆 판사 原田筆 판사 由光井鱗活

일본 법정에서 진술된 내용은 피아간에 사건을 축소함이 유리하므로 그 진상을 파악하는데 다소 무리가 있으나 3·1 독립운동의 실상을 추리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소개했다.(함안항일독립운동사 p.73)


참고문헌

대구복심법원 형공 558호 판결문(1919. 6. 10)
경남 부산 3·1운동사(1979. 9. 10) 삼일동지회
함안 3·1독립운동사 편찬자료(1982. 6.) 안인호
경남독립운동소사(1966. 8. 24) 변지섭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2권 195면(1986. 12. 25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10권 205면(1993. 12. 10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제11권 281면(1993.1994. 12 국가보훈처)
제적부(1995. 6. 13 칠서면사무소)
주민 및 유족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