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애국지사 엄주신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엄주신 장로

엄묘순 권사



아래의 글은 본 홈페이지 애국지사 엄주신 장로님의 4째 딸 엄묘순 권사님이 '칠원교회100년사'에 아버지를 회고하면서 올린 글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엄주신 장로

나는 故 엄주신 장로님(1890~1973)의 4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오빠 3명과 언니 3명이 있었고 아래로 여동생 2명이 있습니다.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 794번지의 우리 집은 사랑채, 안채, 별채와 헛간(축사. 농기구보관창고)에 방이 8개나 되었고 화장실이 2개나 되는 대지가 200여평이 되는 큰 저택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시골집으로서는 희귀한 큰 가마솥이 있는 대형 목욕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겨울철에는 가끔 우리 목욕탕을 빌려 목욕을 하곤 하였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봄철에 제일 먼저 꽃이 피는 산수유나무가 있고, 상록수,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앵두나무, 참죽나무, 목련, 목단, 딸기 등이 있었고 담장을 돌아가면서 감나무가 수십 주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이 가져다 준 바나나 나무가 있었는데 겨울철에 짚으로 입혀 아무리 보온을 해도 추위에 얼어서 죽으므로 바나나는 먹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꽃과 나무를 너무 좋아하셨고 실내에는 선교사님들이 가져온 관상용 선인장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큰 저택인데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는 이 집이 흉가로 소문이 나서 빈 집이었고 밤에는 귀신이 나온다고 동네 사람들이 무서워하였습니다. 우리가 입주한 후에는 17명이 넘는 대 식구에 밤낮으로 찬송소리가 나고, 사랑채에는 약을 지으러 오는 환자들로 붐볐고, 교회를 찾아오는 목사님, 장로님들과 선교사님들이 많았으며 축사에서는 소(牛)와 돼지가 울어대므로 집에 생기(生氣)가 넘쳐 더 이상 흉가가 아닌 아주 좋은 집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엄주신 장로님은 가정에서는 가장(家長), 교회의 장로, 한의사, 애국지사, 실학자(實學者)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생활철학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 왔습니다. 새벽 다섯 시면 언제나 “묘순아! 아버지하고 새벽기도 가자.”하고 깨우셨고 나는 “예!” 대답하고 따라다녔습니다.

아버지는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새벽기도로 시작하고 집에 오셔서 가족들과 아침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성경을 돌려가며 읽었으며 기도도 돌려가며 하였습니다. 그래서 조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한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농사를 돕는 일꾼들은 아침 가정예배가 끝난 후 일을 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참으로 본받을 만한 믿음의 아버지요 장로님이셨습니다. 일제 하에서 조선총독부 허가를 얻은 한의사(면허번호 제483호, 1914. 3. 20)였습니다. 환자들을 치료해 주고 돈을 받으면 그 중에서 깨끗한 돈을 골라서 십일조 함에 넣곤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왜 제일 좋은 돈만 골라서 넣습니까?”하고 물으면 “하나님께는 제일 깨끗하고 좋은 것을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장날(3, 8일)이 되면 “묘순아, 아버지하고 장에 가자.”하시고 데리고 가셔서 생선을 사면 꼭 두 뭉치를 사는데 한 뭉치는 싱싱하고 좋은 것으로 한 뭉치는 조금 못한 것으로 삽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아버지, 똑같은 것을 사시지 왜 하나는 좀 더 싱싱하고 큰 것을 삽니까?” 아버지는 “좋은 것은 주의 종 목사님에게 드리는 것이다.”하고 답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옷을 사도 성탄에 사 주시므로 성탄에는 항상 좋은 옷을 입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는 잘 보관하였다가 주일날에 입고 교회에 가곤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일찍 개화(開化)하셔서 우리 집은 성탄절과 신정(新正)이 제일 큰 명절입니다. 대신 우리 집은 다른 집과 같이 구정과 추석은 지내지 않았습니다. 단 추석 대신에 추수감사절에 처음 익은 곡식과 과일을 하나님께 바치고 목사님께도 드리며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 왔습니다. 정말 본받을 만한 믿음의 아버지입니다. 생일잔치를 하면 칠원읍 내에 유지들을 불러 모시는 것이 아니라, 꼭 동네의 못 살고 어려운 사람들을 불러서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읍내 사람들에게 1년에 몇 번식 우두, 전염병 주사를 무료로 봉사하고 8월 15일 광복절에는 칠원초등학교에서 초대장이 오면 단상에서 일본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압박 아래서 살아 온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 외에는 참 신이 없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신사에 절하면 안 된다고 하여서 우리 형제들은 칠원초등학교 다닐 때 신사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칠원초등학교 교문 오른 쪽에 신사가 있었고 문지기 당번이 항상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교문을 들어오면서 신사에 절하지 않으면 교무실에 일러서 벌을 서고 매 맞고 하였습니다. 해방이 되던 날을 지금도 생생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놈들이 도망하고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면서 말하기를 칠서지서에 순사들이 서류를 태우지 않고 갔는데, 목사 장로 들 중 신사참배 안한 사람들을 8월 15일에 검거하여 18일 전기 고문하여 죽일 명단과 장소를 정한 서류가 나왔다고 하며 아버지 엄주신 장로와 오빠 엄영환(1914~1993) 집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묘순아! 하나님 은혜 참으로 감사합니다. 삼일 후면 죽을 목숨 더 살게 하셔서 하나님 일할 수 있도록 하시니 정말 감사합니다.”하시면서 땅을 치고 대성통곡을 하셨습니다.

어머니 임명남 여사께 직접 들은 말씀입니다. 아버지는 교회 건축하느라고 칠서면 무릉리의 우리 집 식구들은 돌보지 않고 칠원읍에만 가서 살았다고 합니다. 부자 집 외동딸로 아버지께 시집오신 어머니는 9남매를 기르느라고 말할 수 없이 고생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신발도 없이 고생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독립운동 하느라고 교회에 숨어서 태극기 만들어 장날이면 장꾼들에게 태극기 돌리고 만세를 부르고 교인들 주동하고 순사들에게 구두 발로 차이면서 신사참배 안 했다고 해서 함안경찰서 구금되었을 때, 마산 문창교회 여전도사와 독실한 교인들이 골방에 숨어서 울며불며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만히 엿들어보니 우리 엄주신 장로님 빨리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큰 오빠 엄영환 집사님도 늘 경찰서에 불러 다니곤 하였습니다. 쌍둥이 오빠 문섭. 무섭은 신사참배하지 않는다고 칠원초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해 마산창신학교로 전학하였습니다.

선교사님들과 목사님, 장로님들이 칠원에 오시면 무조건 우리 집으로 모셨고 극진히 대접하였습니다. 가끔 손양원 목사님이 칠원에 오시면 친가(親家)에서 주무시지 않으시고 꼭 우리 집에서 묵으셨는데 그 어른은 농담을 참 잘 하셨습니다. 밥상을 차려 드리면 밥상 위에 손을 이리저리 저으시고는 “나는 문둥이 목사다! 내가 만지는 것은 못 먹는다.”하시면서 농담을 하였습니다. 교회 예배에 교역자를 모시지 못할 때에는 아버지께서 설교하시고, 큰 며느리 지의숙 집사는 풍금치고, 우리들은 찬양하고, 오빠는 유년주일학교 교장이며, 우리 형제들은 주일학교 교사로 온 가족이 교회 일을 맡아서 교회를 섬겼습니다.

독실한 신자였던 외할머니께서 성탄절에 칠원교회에 오셔서 사방으로 둘러보시면 우리 식구가 가득하므로 너무나도 좋고 기뻐서 '우리 구주 나신 날 목자 영광 볼 때에 천사찬미 하기를 예수 과연 나셨네' 하고 둥실 둥실 춤을 추시므로 온 교인들이 배꼽을 잡고 웃곤 하였습니다.

나는 부산의 남성여고에 진학하여 학생대장을 맡았고 모두들 여자아이가 어떻게 저렇게 우렁찬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느냐고 의아해 하기도 하였습니다. 충남 연기군 조치원으로 시집와서 3남매를 생산하였고 남편 윤진영 장로는 교회를 잘 섬기다가 소천하였습니다. 이곳 연기군에서는 엄묘순 회장을 모르는 사람은 사상이 의심스러운 사람이라고 농담을 합니다. 마을부녀회장으로 새마을회장으로 또 지역사회를 위하여 많은 봉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8학년 2반이 되어 남은 여생을 자녀손들을 위하여, 집안을 위해, 교회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 마칩니다.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좋은 신앙을 잘 지키고 계승하겠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주후 2008년 4월 조치원에서
엄묘순 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