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상 논설위원

일러스트 김성규
20여 년 전 국회 사진을 보면 항상 중앙을 차지하는 몇 명이 있었다. 기자회견 때는 있는지도 몰랐는데 신문을 보면 좋은 자리는 그들 차지였다. 요즘 아이돌 표현을 빌리면 ‘센터 경쟁’의 귀재들이다. 이 중에는 이미 돌아가신 분도, 국회 최고위직까지 오른 분도 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운동선수처럼 기회 포착 능력이 중요한데, 왜소한 분들이 그걸 잘했다. 유인태 전 의원은 “좀 밝히는 선수들이 그렇다”고 했다. 색(色)을 밝히는 게 아니라 언론 노출에 목숨을 건다는 뜻이다.
▶당 대표나 대선 주자 옆자리도 ‘명당 자리’다. 그들과 귓속말을 나누는 모습이라도 잡히면 유력 정치인 측근으로 급부상한다. 김영삼·김대중의 3김(金)시대가 특히 그랬다. 2000년대 초반 하루는 당 대표와 귓속말 하는 정치인이 있기에 당 대표에게 “뭘 상의했냐”고 물었다. 당 대표 답은 허무했다. “별거 아니야. 오늘 점심 뭐 드실래요? 이러더라구.”
▶대통령 기자회견 때 기자 좌석 배치도 논란이다. 일부 기자는 질문 내용보다는 좋은 자리에 앉아 자신을 알릴 기회로 여기기도 한다. 문재인 청와대 시절엔 한복을 입고 오거나, 곰 인형을 흔들며 얼굴을 알리려는 기자도 있었다. 좌석을 두고 매번 뒷말이 나오니 선착순이나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했다. 트럼프 대통령 이후 일부 변화는 있지만 백악관 브리핑룸은 AP, CNN,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사에 지정된 좌석을 배정한다.
▶대통령 권력이 가장 센 시기는 당선자 때다. 이때 이후로 대통령 권력은 하강 곡선을 그린다. 당선자 때 사진을 찍어두면 효과도 오래가고 ‘약발’도 좋다. 이명박 당선인이 전경련(현 한국경제인협회)을 방문했을 때 재벌 총수들끼리도 센터 경쟁이 벌어졌다. 대통령 의전에선 위치가 곧 권력이기 때문에 프로토콜이 엄격하다. 그런데 한 재벌 총수가 이 원칙을 깨고 갑자기 당선인 바로 뒤를 파고들었다. 질서가 흐트러지자 다른 총수들도 까치발을 들거나 밀쳐내는 소동이 벌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죄 선고 직후 오 시장 바로 옆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정치인들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센터 경쟁’에 룰은 없다지만 보통 다선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정치권의 예의였다. 그런데 이날 5선의 윤상현 의원을 서울의 한 원외 위원장이 밀쳐 내더니 그 혼란을 틈타 전 서울시 공공기관 임원이 시장 옆자리를 차지했다. 정치도 스포츠도 ‘위치 선점’이 중요한데,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아니라면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
출처: 조선일보(202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