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식 논설위원
총체적, 동시다발적 한미 갈등 문재인 정부 때도 이러진 않아
전작권 전환은 더 멀어지고 통상 갈등은 계속 악화될 것

강신철 국방부 장관이 지난 2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를 방문해 제이비어 브런슨 유엔군사령관(겸 주한미군·연합사 사령관)과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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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늘 징후가 있기 마련이다. 지금 최악이라는 한미 관계 역시 그렇다. 그 전조는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부터 보였다.
균열은 가장 약한 고리이던 유엔군사령부에서 시작됐다. 유엔사는 6·25전쟁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다국적 군사 조직으로, 남측 비무장지대(DMZ) 출입 승인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정부는 1기 내각이 완성되기도 전에 유엔사와 싸웠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작년 7월 후보자 시절부터 유엔사의 DMZ 통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유엔사는 미군이 주도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한다. 그러니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사에 대한 공격을 자신과 무관한 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미군에 대한 불만을 정권 초기부터 우회적으로 표현한다고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을 이 정부 당국자들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공개적으로 유엔사를 비판했다. 유엔사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된 한국과 미국의 대립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점점 커졌다. 올해 초부터 미군은 그간 정기적으로 제공하던 주요 대북 정보를 한국군에 더 이상 공유하지 않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밀하게 협력해야 할 국정원과 미국 정보 당국의 파열음도 불거졌다. 전작권 전환을 두고 한미가 공개적으로 이견을 표출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통상 문제도 마찬가지다. 쿠팡 사태는 개인 정보 유출 때문에 시작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미 간 갈등으로 변질됐다. 미국이 자국 기업 탄압이라 오해한 사안이다. 설명만 잘하면 못 풀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데 여전히 해결이 안 된다. 정보통신망법 개정 강행, 대미 투자 미집행 문제 등 한미 간 이견은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도 한국과 미국의 갈등이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진 않았다.
문제는 이 정부가 악화된 한미 관계를 방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엔 강경화 주미 대사까지 나서서 “백악관과의 고위급 협의가 답답할 정도로 안 된다”고 했다. 한미 관계가 악화되면 손해만 커진다. 정부는 전작권 전환으로 ‘자주 국방’을 하겠다고 주장하지만, 미국과 각을 세우면 전작권 전환은 더욱 어려워진다. 전작권 전환을 하고 싶으면 미국과 신뢰를 쌓아 그들의 군대를 한국이 지휘해도 된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통상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관계가 나빠지면, 트럼프가 관세율만 높일 것이다.
사석에서 만난 정부와 민주당 인사들은 한미 관계 악화를 미국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트럼프의 언행은 분명히 우리가 평소 알아온 ‘미국 대통령’과는 다르다. 천문학적 대미 투자를 강요하고, 중동 전쟁 파병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외교 대화는 상호 작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하지 않고 집권하고 있었다면 한미 관계만큼은 지금보다 낫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한다.
최근 한국인의 반미 의식이 치솟았다고 한다. 미국을 비호감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이 20년 만에 과반을 넘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 정부가 일부러 이런 효과를 의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공교롭게도 한국과의 관계가 개선됐다고 자평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다이빙 중국 대사는 “중한 관계가 정상 궤도로 복귀했으며,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에도 눈에 띄게 온기가 돌고 있다”고 했다. 의아한 건, 이 정부 들어 한중 관계에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뚜렷이 떠오르는 게 없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에 온 미국의 주요 인사를 만난 사람들이 들었다는 말만 떠오른다. “여기가 서울인가, 베이징인가?”
출처: 조선일보(2026.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