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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신광영]AI 기업의 책 싹쓸이

  • 관리자
  • 26.10.20
  • 17

신광영 논설위원

 

인공지능(AI) 모델 ‘클로드’를 운영하는 미국 AI 기업 앤스로픽이 최근 165t에 달하는 한국 책을 사들이고 있다고 한다. 이 무게를 책 권수로 환산하면 40만 권이 넘는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등록되는 신간은 대략 6만여 종이다. 그러니 최근 6년간 나온 온갖 책들을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다. 앤스로픽은 일본과 대만에서도 책을 대량 주문한 사실이 미국 내 소송 과정에서 확인됐다. 세계 각국의 헌책방에도 AI 기업으로 추정되는 구매자로부터 때아닌 ‘싹쓸이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미 법원은 앤스로픽이 작가들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보상하도록 했다. AI 학습용으로 해적 사이트를 통해 수백만 권의 텍스트를 몰래 내려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저작권 침해가 확인된 책만 48만 종이다. 보상액은 작품당 4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피해 저자들 중엔 한강, 김애란, 김영하 등 한국 작가도 최소 15명 포함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판결로 앤스로픽이 불법 복제본을 쓰기 어렵게 되자 나라별로 대대적인 책 매입에 나선 것이란 시각이 많다.

 

▷하지만 앤스로픽의 책의 가치 계산법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AI 학습이 목적이다 보니 책을 1종당 1권씩만 산 뒤, 초고속 스캔을 해 디지털화한다고 한다. 저자의 경험과 통찰은 물론이고 오랜 노고의 결과물인 저작을 활용해 AI 성능을 높이고 다중에게서 막대한 구독료를 받으면서 그 대가로 책 한 권 값만 치르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남의 책으로 상업적 수익을 냈다면 저작권료를 내야 하는데 그걸 책 한 권 사는 값인 1만, 2만 원으로 퉁치겠다는 것이다. 인류가 어렵게 축적한 지식을 헐값에 ‘약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AI 제국주의”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연합(EU)은 저자가 거부 의사를 밝힌 책에 대해선 AI 학습에 사용되지 않도록 제한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미국에서도 AI 기업들의 저작권 책임 윤리를 강화하는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에선 몇 해 전 AI 학습에 대해 저작권자 동의를 받도록 법을 개정하려 했다가 무산된 상태다. 자칫 우리 책들이 글로벌 AI 기업들이 부담 없이 갖다 쓰는 저렴한 ‘재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I 기업들이 ‘책 사재기’에 눈을 돌리는 데는 내부적인 이유도 있다. 요즘 온라인에 AI 생성물이 넘치다 보니 이를 AI가 다시 학습할 경우 오류와 왜곡이 누적돼 ‘모델 붕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 기업은 작가들을 제대로 대우해야 한다. 미국 작가조합은 창작자에게 합당한 대가를 주지 않고 수탈하면 전업 작가란 직업 자체가 사라질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사람이 만드는 고품질 콘텐츠가 고갈되면 AI도 자기가 만든 말만 되풀이하다 퇴화할 수 있다.

 

출처: 동아일보(202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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