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논설위원

일러스트=이철원
쥘 베른은 ‘해저 2만리’뿐만 아니라 하늘을 나는 자동차 이야기도 썼다. 소설 ‘세계의 지배자’(1904)에 등장하는 전천후 만능차 ‘에포방트’다. 육지에서는 자동차, 바다에서는 배, 하늘에서는 비행기로 변신한다. 현대 대중문화 속 플라잉 카의 원형이 된 차다. 이 책을 읽던 초등학생 시절엔 어른이 되면 자동차를 타고 서울·도쿄·뉴욕 상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거라 꿈꿨다.
▶청소년 시절엔 영화 ‘백 투 더 퓨처’가 있었다. 주인공 마티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 미래는 2015년의 캘리포니아였다. 그 역할의 마이클 J 폭스가 자기 차의 바퀴를 90도로 접어 평평하게 누인 채 하늘로 둥실 떠오르는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다. 영화 ‘치티치티뱅뱅’(1968)의 날개 달린 차, ‘블레이드 러너’(1982)의 스피너까지 찾아보며 꿈을 키웠지만, 정작 영화 속 배경이었던 2015년이 지나서도 그 세상은 오지 않았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이 오래된 향수를 다시 건드렸다. 스페이스X의 로켓 기술을 결합했다는 신형 로드스터 시연회에서다. 차체 하부에서 초고압 공기를 분사해 지상의 차들을 뛰어넘고 공중 회전을 해내는 모습은 영화 속 그대로였다. 머스크는 현장에 모인 관객들을 향해 “이 시연이 AI 가짜 영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줄 증인이 필요했다”고 했다. 테라푸지아나 에어로모빌 등 전에도 ‘하늘 차’를 표방한 발표는 있었지만, 신형 로드스터만큼 상상 속 그 장면을 재현한 차는 없었다.
▶그러나 조명이 꺼진 뒤 남은 진실은 차갑다. 머스크가 보여준 것은 지속적인 비행이 아니라, 가스를 순간 분사해 떠오르는 일종의 ‘묘기’였다. 140데시벨이 넘는 제트기 수준 소음과 초고압 가스로 인한 도로 파편, 보행자 안전 문제로 일반 도로에선 불가능하다. 계속 밀리는 로드스터 양산 일정에 지친 고객을 달래고 주가를 지탱하려는 ‘쇼’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투자자 피터 틸은 “우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원했지만, 남은 건 140자(트위터)뿐이었다”고 물리적 혁신 기술의 정체를 아쉬워한 적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한 세대 전 소년·소녀의 꿈은 반만 실현된 것 같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같은 ‘소프트웨어 영역’은 상상력을 뛰어넘었지만, 쇳덩이를 공중에 띄우는 ‘물리와 에너지의 영역’은 중력의 벽이 여전하다. 추락 위험과 막대한 전력 소모라는 제약이 엄연하지만, 그럼에도 이 꿈을 포기하진 않을 것 같다. 꽉 막힌 정체에서 벗어나 하늘로 바퀴를 띄우는 상상은, 중력에서 자유롭고 싶은 인간의 로망일 테니까.
출처: 조선일보(2026.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