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기자 논설위원

일러스트 이철원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의 주인공은 소방관이다. 불길에서 아이를 구하고 추락사한 소방관이 일곱 차례 재판을 거쳐 환생하기까지 이야기를 담았다. 저승에 가자마자 그는 ‘정의로운 망자’ 자격을 얻는다. 변호를 맡은 저승 차사들은 “논개 이후 가장 의로운 추락사”라며 환대한다. 영화는 아무리 의인이라도 죄와 벌을 피할 수 없고, 인간의 후회와 용서로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진한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가 설정한 의인의 상징이 순직 소방관이다.
▶주인공은 영화 끝까지 순직 때 입고 있었던 그을린 방화복을 벗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설정이지만 옷이 주는 시각적 효과가 강렬하다. 소방관 방화복은 그 자체가 구원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6년 전 울산 고층 건물 화재 때 소방관에게 구출된 시민의 증언이 유명하다. “연기에 쓰러지기 직전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 ‘헬멧을 쓴 신(神)인가’ 하며 의식을 잃었다.”
▶서울 홍제동 화재 참사(소방관 6명 순직)를 다룬 영화 ‘소방관’은 소방직을 “사람을 구하면서 살 수 있는 자격”이라고 표현했다. 소설가 김훈은 “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국가의 기능이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설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진실을 질주하는 소방차를 보며 확인한다.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늘 바람대로 되지는 않는다. 어제 경기도 부천의 도장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 여섯 명이 다쳤다. 한 명은 구조 당시 심정지 상태였다고 한다. 가장 먼저 뛰어든 소방관들이 연기와 열기에 고립돼 화를 당했다. 그을린 방화복 차림의 소방관이 화재 진압 후 눈물을 흘린다. 역시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이 그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한다. 그들 옆에 추미애 경기지사가 어색하게 서 있다.
▶추 지사는 경기도 소방의 총책임자다. 그런 사람 입에서 “소방은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는 말이 나왔다. 누군가에겐 인간과 국가의 가치를 확인하는 숭고한 직업이 누군가에겐 돈을 빨아먹는 빨대에 불과한 것이다. 생각이 죽어 말이 되고, 말이 죽어 글이 된다고 했다.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가 평소 어떤 생각을 하기에 저런 말이 튀어나오는지 할 말을 잃는다. 그런 말을 듣고도 주저 없이 불길에 뛰어든 소방관들의 소명 의식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출처: 조선일보(2026.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