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 수석논설위원
![[천자칼럼] 상임지휘자 없는 빈 필](https://img.hankyung.com/photo/202610/AA.46080799.1.jpg)
“어떤 찬사도 그 위대함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빈 필하모닉에 남긴 헌사다.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빈 필에는 상임지휘자가 없다. 1933년 이후 90년 넘게 지킨 전통이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레너드 번스타인조차 객원 지휘자였다. 세계적인 거장을 번갈아 초청하되 악단 운영은 단원이 직접 결정한다. 올해 창단 184주년을 맞은 빈 필의 독특한 문화다.
음색을 지키는 방식도 고집스럽다. 다른 악단이 현대식 악기를 택할 때 빈 필은 연주하기 까다로운 빈 오보에와 빈 호른을 고수했다. 부드럽고 깊은 소리를 포기할 수 없어서다. 두 악기는 빈 필의 정체성과 같다. 단원이 되는 길도 험난하다. 입단하려면 빈 국립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오디션을 통과해야 한다. 그곳에서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며 고유의 주법과 소리를 익힌 뒤 단원이 될 자격을 얻는다. 최소 2년은 실력을 연마해야 한다. 세계가 ‘황금빛 소리’라고 부르는 빈 필의 음색은 지휘자 한 사람의 해석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오며 단원들이 갈고 닦은 유산이다.
이달 말(25~26일) 서울과 부산에서 열리는 내한공연에는 특별한 인연이 겹친다. 지휘자 투간 소키에프는 2009년 서울 공연에서 주빈 메타를 대신해 지휘봉을 처음 잡았다. 당시 32세이던 그는 이후 17년간 빈 필과 인연을 이어왔고, 내년 빈 신년음악회 무대에도 선다. 빈 필과의 첫 만남이 서울에서 이뤄졌으니 이번 공연이 그에게는 귀향과도 같다.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2022년 뉴욕 카네기홀 공연에서 갑자기 빠진 협연자를 대신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그는 공연 전날 밤 베를린 호텔 바에서 새벽 4시까지 연습하고 뉴욕으로 날아갔다. 위기의 순간 빈 필과 인연을 맺은 두 음악가가 이번에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으로 만난다. 빈 필이 1877년 초연한 브람스 교향곡 2번도 선보인다. 149년 전 브람스가 자신의 음악을 맡긴 바로 그 악단이다. 184년 동안 수많은 지휘자와 연주자가 거쳐 간 빈 필의 역사에 또 하나의 장면이 한국에서 더해진다.
출처: 한국경제(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