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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알퍼의 런던 Eye] [57] 영국의 산책로 '풋패스'

  • 관리자
  • 26.10.18
  • 16

팀 알퍼 칼럼니스트

 풋패스의 위치를 알리는 녹색 표지판 /팀 알퍼 제공

풋패스의 위치를 알리는 녹색 표지판 /팀 알퍼 제공

 

영국 여행을 하면 어디를 가도 ‘풋패스(Footpath)’라는 작은 녹색 표지판이 보일 것이다. 그 단어에 딱 들어맞는 한국어를 찾기는 어렵다. 풋패스라는 개념이 아마도 영국에만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에서 풋패스는 단순한 보행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풋패스는 공유지이든 사유지이든 누구나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보장된다. 수백 년 전에 생겨났을 이 좁다란 길들은 상인들이 곡식이나 가축을 팔기 위해 이동하던 교역로였을 수 있고, 외딴 지역에 사는 이들이 장터나 교회를 오가던 길이었을 수도 있다.

 

풋패스는 잘 정비된 한국의 산책로들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가꾸지 않은 거친 밀림에 가깝다. 여름에는 무성한 쐐기풀과 가시덤불에 찔리거나 제멋대로 자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며, 겨울에는 꾸덕한 진흙탕으로 변해 발을 빼내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정부가 이런 길을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정부는 풋패스 관리를 위해 매년 수백만 파운드를 지출한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는 39만3500개가 넘는 풋패스가 있고 총길이는 17만4600㎞에 달한다. 도시계획자들에게는 다소 골칫거리일 풋패스는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큰 즐거움이다. 걷기가 심혈관 질환과 당뇨병, 치매의 발병 위험을 낮춰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차 없이 영국 전원에 살다 보니 걸을 일이 많은 나에게 새로운 풋패스를 발견하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처음 보는 마을을 발견할 때도 있고 막다른 길에 다다르기도 한다.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그 불확실성이 오히려 큰 매력이다.

 

반듯한 도로와 인도가 늘어선 한국의 도시 공간은 편리함에서는 최고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인간의 활동 중 하나인 걷기를 위해서는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닐 수도 있다. 영국식 풋패스 같은 산책로를 몇 군데 조성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인의 일상에 작은 모험과 활력이 더해질 수 있지 않을까?

 밀림처럼 우거진 전형적인 영국의 풋패스의 풍경 /팀 알퍼 제공

밀림처럼 우거진 전형적인 영국의 풋패스의 풍경 /팀 알퍼 제공

 

출처: 조선일보(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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