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보이사·전문의
■ 마음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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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고민
교통사고 이후 정신적 후유증으로 고통스럽습니다. 두 달 전 퇴근길, 신호 대기 중에 두 차에 추돌당했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날 이후 사고 장면이 자꾸 떠오릅니다. 차에 타기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나며, 급정거 소리만 들려도 몸이 굳어버립니다. 운전은 아예 못하고 있고, 택시를 타도 내내 긴장합니다. 신체적 외상은 없는데 왜 이렇게 몸이 굳고 긴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고로 인한 충격이 반드시 몸에 난 상처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차에 탈 때마다 몸이 굳고, 출퇴근조차 힘들어지니 당황스러우실 겁니다. 다친 곳도 없는데 왜 아직 이러나 싶으실 겁니다.
A : 스스로 다그치면 회복 더뎌… 한적한 곳에서 짧은 운전 등 권해
▶▶ 솔루션
우리 뇌에는 생명을 위협한 상황을 기억해 두었다가 비슷한 신호가 오면 즉시 경보를 울리는 장치가 있습니다. 사고 순간 이 장치는 ‘차 안은 위험하다’는 정보를 강하게 새겨뒀고, 차에 오를 때마다 사연자 분을 지키기 위해서 경보를 보냅니다. 문제는 사고는 끝났는데 경보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교통사고 시 다친 정도도 중요하게 보지만 ‘그 순간 얼마나 무력했는가’에 큰 가중치를 둡니다. 신호 대기 중 뒤에서 들이받힌 사고는 피할 방법도 예측할 단서도 없기 때문에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기곤 합니다. 몸이 멀쩡하다는 이유로 “이 정도면 괜찮아야지” 하고 스스로를 다그치면 오히려 회복이 더디게 됩니다.
사고 후 몇 주간 장면이 떠오르고 잠을 설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대개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한 달 이상 원치 않는 기억이 반복되고, 관련된 상황을 계속 피하며 늘 긴장하고 쉽게 놀라 일상에 지장이 발생한다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고려해야 합니다. 두 달째 운전을 못 하고 계신 만큼 전문가와 상의해보시길 권합니다.
혼자 해볼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핵심은 ‘피할수록 두려움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차를 피하면 당장은 편하지만 뇌는 “역시 위험했다”고 학습해 기존에 새겨진 경보를 더 강화합니다. 주차된 차에 몇 분 앉아 있기, 가족이 운전하는 차로 가까운 거리 다녀오기, 한적한 길에서 짧게 운전해 보기처럼 작은 단계부터 시작하면 좋습니다. 불안이 올라와도 그 자리에 머물러 스스로 가라앉는 것을 경험해야 뇌가 “이제는 안전하다”고 새로 배웁니다. 핸들의 촉감처럼 ‘지금 여기’의 감각에 주의를 두는 것도 위험했던 과거 순간의 기억을 안전한 현재의 기억으로 새로 쓰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행히 PTSD는 외상초점 인지행동치료,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EMDR) 같은 치료의 효과가 잘 입증되어 있고, 불안과 불면이 심하다면 약물치료도 도움이 됩니다. 사고는 한순간이었지만, 그 기억이 앞으로의 삶을 운전하게 둘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운전석에 앉는 날은 분명히 올 것입니다.
출처: 문화일보(2026-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