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상 논설위원

일러스트=박상훈
대통령 골프 이야기 때마다 태릉 골프장이 등장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사관생도들이 국제 감각을 익혀야 한다”며 골프장 조성을 지시했고 시타까지 했다. 해외 순방을 다니며 골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태릉뿐 아니라 안양 등 인근 골프장을 찾았고, 라운드 도중 측근들과 막걸리를 즐겼다. 그는 공을 친 후 클럽을 캐디에게 주지 않고 어깨에 메고 걸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비거리 230m에 달하는 장타자였고 청와대에 골프 연습장까지 만들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야당 시절 가끔 골프를 쳤는데 드라이버샷을 치다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취임 이후 “임기 중 골프를 안 치겠다”고 선언했고, 청와대 연습장도 철거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자 공직 사회는 당연히 ‘골프 금지령’을 예상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 태릉을 찾아 17번 홀에서 생애 첫 버디를 포함해 96타를 기록했다. 자신은 “내가 치면 ‘골프 금지령’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했지만, 지지층은 대통령 골프 문제로 다퉜다.
▶대통령 골프는 늘 ‘뜨거운 감자’였다. 태풍이 쳐도 배가 침몰해도 “그 시각 대통령이 뭘 했느냐”를 두고 정쟁하는 나라에서 대통령 골프는 알려지면 안 되는 일이 됐다. 단 외교 골프는 예외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와 1시간 30분 동안 카트를 몰며 담소를 나눴다. 윤석열 대통령 때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라운딩이 외교 현안이었다. 윤 전 대통령의 골프 소식이 알려지자 민주당은 “트럼프 당선 전부터 쳤다. 외교용이라는 해명은 거짓말”이라며 공세를 폈다. 민주당은 수해, 화재, 북한 등을 거론하며 “대통령이 이럴 때 무슨 골프냐”고 했다.
▶야당이 지난 10일 대구 상가 천장 붕괴 때 이재명 대통령이 골프 친 것을 문제 삼자 청와대가 “가족과 함께 태릉 골프장을 찾았고, 사고를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야당은 이 대통령이 과거 ‘세월호 7시간’을 문제 삼은 것을 들어 “이건 직무 유기가 아니라 직무 포기”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군 골프장은 업무 연장”이라며 옹호했다.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골프를 포함해 대통령 여가에 대해 여야가 신사협정을 맺을 때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태릉 방명록에 “넉넉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한시름 털고 갑니다”라고 적었다. 대통령이 골방에서 소셜 미디어에 매달리는 것보다 야외에서 운동하면서 머리 식히고, 사람 얘기 듣는 것이 국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출처: 조선일보(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