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논설위원

일러스트=박상훈
중국 베이징 중난하이에 있는 청나라 시기 전각은 과거 금단의 공간이었다. 중난하이 호수 안에 조성된 고립된 인공섬 잉타이는 황제 광서제가 죽을 때까지 서태후에게 유폐됐던 곳이다. 황실 사람들만 쓰던 비밀의 공간이었던 이곳은 현대 들어 중국 최고위층의 집무실과 국빈 맞이 장소로 쓰임이 바뀌었다. 지난 5월 중국을 국빈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환영 행사도 중난하이의 한 전각에서 열렸다.
▶중국 외에도 많은 나라가 왕조 시대 고궁을 현대의 목적에 맞게 활용한다. 프랑스 베르사유궁과 오스트리아 쇤부른궁, 튀르키예의 시라간궁 등은 내부의 옛 연회장을 외교 회담장뿐 아니라 각종 시민단체를 위한 회의장과 행사장으로 개방하고 있다.
▶반면 우리 고궁은 오랫동안 출입 금지 팻말로 격리됐었다. 2018년 창덕궁 인정전 앞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대통령 환영식이 고궁을 외국 정상 환영 행사에 활용한 첫 사례였을 정도다. 지금도 경복궁 내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 내부는 일반인 출입이 불가능하다. 조선 시대 대표적 연회 공간인 경회루도 1995년 광복 50주년 경축 연회 등에 쓰였을 뿐, 활용 사례가 손으로 꼽을 정도다. 고궁을 활용하자는 주장 못지 않게 최대한 손대지 말고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지난 2일 첫 선을 보인 경복궁 야외 결혼식은 이런 관행을 깨고 고궁을 일상 공간으로 활용한 참신한 시도다. 올 해는 주말과 공휴일 두쌍씩 다음 달 8일까지 총 28쌍이 결혼하고 내년에는 80쌍까지 늘린다. 지난 주말 결혼식에 가보니 신랑신부 하객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즉석 하객이 되어 축하 박수를 치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부부 동반으로 방한한 테리씨는 "캐나다엔 고궁이 없어 이런 멋진 결혼식을 할 수 없다"며 부러워했다.
▶고궁 결혼식 이전에도 옛 유산을 활용하려는 노력이 없지 않았다. 경복궁 건청궁과 소주방에선 다과회나 음식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고, 최근 복원된 덕수궁 돈덕전에서는 한독 수교 140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다만 숙박 서비스는 우리 고궁이 풀어야 할 숙제다.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과 일본의 막부 시대 고성들은 호텔로 개조돼 투숙객을 받고 있다. 우리 고궁은 목조여서 자칫 화마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게 걸림돌이다. 국가유산청이 경복궁 야외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것도 화재였다고 한다. 고심 끝에 화촉을 밝히는 대신 난초에 물 주는 행사로 대체했다. 이런 운영의 묘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키면 ‘궁(宮)스테이’도 가능하지 않을까.
출처: 조선일보(2026.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