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임 논설위원

많은 한국인이 밖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걸 즐긴다. 천막 아래 아늑한 불빛이 새어 나오던 ‘포차’(포장마차)가 원조 격이다. 식당 앞 야외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는 야장(野場), 동네 가게나 편의점 앞에서 간단한 안주를 펼쳐 놓고 술을 먹는 가맥(가게 맥주)과 편맥(편의점 맥주)도 있다. 한강 치맥(치킨과 맥주), 한강 회크닉(생선회와 피크닉)도 빠질 수 없다. 밤에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치안과 공공장소 음주에 관대한 문화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이처럼 공공장소 음주가 만연하다 보니 그 폐해도 커지고 있다. ‘서울의 대문’ 격인 서울역 앞 광장은 노숙자들이 마신 술병이 나뒹굴고 음주로 인한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광장의 기능을 잃고 사람들이 피해 다니는 고립된 공간이 됐다. 서울 중구와 용산구는 서울역 광장 일대를 금주 구역으로 지정하고 내년 3월부터 금주 구역 내에서 술을 마시면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청계천은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면서 밤새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를 일삼는 일이 잦아졌다. 서울시는 청계천을 금주 구역으로 지정하고 위반 시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21년 국민건강증진법이 시행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금주 구역을 지정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공원서 술 한잔이 어때서’ 하는 심리적 거부감에다 인근 상인들의 거센 반발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서울시도 한강공원을 금주 구역으로 추진했다가 코로나 와중에 ‘한강 주점’까지 문을 닫으면 숨 쉴 곳이 없다는 시민들의 원성에 보류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서울시민 4명 중 1명이 술을 1년간 입에 댄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음주문화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덕분에 금주 구역 지정도 힘을 받고 있다. 서울 은평구가 최근 어린이공원 34곳을 금주 구역으로 지정했다. 앞서 서울 광진구와 금천구, 대구 북구와 달서구, 강원 평창군, 경남 김해시 등도 공원에서 음주를 금지했다. 실질적인 단속이 되겠냐는 회의론도 나오지만, 공공장소 음주가 민폐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미국 뉴욕 공공장소에선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병뚜껑을 따기만 해도 불법이다. 영국, 호주는 지자체별로 금주 구역을 정해 단속하고, 싱가포르는 심야 시간대 공공장소 음주를 금지한다. 아니, 외국에선 광장이나 공원에서 술병을 꺼냈다간 경찰이 도착하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견딜 수 없다. 음주를 ‘범죄 예비 단계’쯤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정에서 ‘주취 감경’이 있을 정도로 술 권하는 사회다. 이제 공공의 열린 공간만큼은 취객에게 뺏기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많다. 술을 굳이 밖에서 마셔야 하나 싶다.
출처: 동아일보(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