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열 기자

일러스트=이철원
기원전 37년 고대 로마인들이 나폴리 인근 언덕을 곡괭이로 뚫은 700m 길이의 길은 보행자와 마차가 함께 오가던 가장 오래된 터널 중 하나다. 장애물을 뚫는 터널을 넘어 1863년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하면서 인류의 ‘지하 교통 시대’가 열렸다. 자동차가 땅속을 달리는데 반세기가 더 걸렸다. 자동차가 뿜어내는 치명적인 배기가스 때문이었다.
▶이 난제를 푼 것은 1927년 뉴욕 허드슨강 아래 개통한 홀랜드 터널이었다. 거대한 환기 팬 84대로 공기를 밀어 넣고 매연을 빨아내며 90초마다 터널 안 공기를 통째로 바꿨다. 이후 바람을 한 방향으로 밀어내는 제트팬과 질소산화물을 분해하는 특수 설비도 등장했다. 1999년 39명이 숨진 몽블랑 터널 화재 참사 이후 연기를 뽑아내는 배연 덕트와 물안개 소화 설비 등 최첨단 방재 기술이 의무화됐다. 여기에 지름 15m가 넘는 굴착기(TBM) 기술이 나오고, 토지 소유권 영향이 없는 지하 40m 이하 ‘대심도(大深度)’ 개념이 정립됐다. 지상 보상비 부담 없이 도심 밑바닥을 뚫는 법적·공학적 기반이 완성된 것이다.
▶장벽이 해결되자 글로벌 도시들이 앞다퉈 뛰어들었다. 미국 보스턴은 고가도로를 땅 밑으로 내리는 ‘빅 디그’에 14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파리는 도시 외곽 순환 A86 일부를 지하화했고, 마드리드(M-30)와 도쿄(야마테 터널)도 가세했다. 1㎞당 수천억 원이 드는 공사비는 지하철과 맞먹지만, 지상 토지 수용비를 크게 아끼는 데다 그 위에 공원과 아파트 단지를 올릴 수도 있어 시도하는 것이다.
▶우리도 본격적인 지하도로 시대를 맞고 있다. 서울 서초·강남을 관통하는 경부고속도로 한남~양재 구간을 지하화해 지상을 숲으로 바꾸는 사업이 속도를 내고, 수도권 상습 정체 구역인 용인 수지~판교 금토동 10㎞ 구간에 ‘제2 용인~서울 고속도로’도 민자적격성 조사를 통과하며 2031년 착공을 목표로 닻을 올렸다. 서울 동부간선도로와 인천 경인고속도로, 부산 만덕~센텀 구간 등 전국 곳곳의 막힌 대동맥들도 줄줄이 땅 밑으로 들어갔거나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 지하철이 사람을 땅속으로 데려가 도시를 넓혔다면, 지하도로는 차와 소음을 묻어 지상을 사람에게 돌려준다. 미래의 지하 도로는 자율 주행 캡슐과 물류 로봇이 신호등 없이 유기적으로 흐르는 3차원 네트워크가 될 것이다. 차는 발밑에서 막힘없이 달리고, 사람은 그 위를 자유롭게 거니는 미래 도시의 새로운 풍경을 상상해본다.
출처: 조선일보(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