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윤기에 대한 무기징역 선고 사형 구형에도 그런 판결 많아
사형제 논란 돌아보게 한 계기 헌법 110조4항 단서 사형 규정
30년 가까이 사형 집행은 없어 찬반 갈등 해결하는 게 바람직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 중에는 인류에 대한 기여로 역사에 남는 위인들도 있지만, 중범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름들도 있다. 그런 이름의 하나로 장윤기를 들 수 있다. 그 장윤기 사건이 유달리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끈 것은 몇 가지 특징 때문이다. 피해자가 귀가하던 어린 여고생이었다는 점, 가해자인 장윤기가 우발적 살인이고 성범죄 목적이 없었다고 여러 차례 거짓말을 했다는 점, 나아가 경찰인 그의 아버지가 성범죄 목적 관련 증거의 왜곡·은폐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점, 무엇보다 성범죄의 은폐·축소를 국가수사본부의 지휘에 따라 경찰이 조직적으로 시도했다는 점이다.
서서히 잊혀 가던 장윤기 사건이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검찰의 사형 구형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1심 판결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고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한 사례는 매우 많다. 그런데 장윤기 사건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쏠리는 것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지적했던 장윤기 사건의 특징들과 범행 후 그가 진정한 반성과 후회의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 등이 검찰의 사형 구형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감은 1심 법원의 무기징역 선고가 정당한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비단 장윤기 사건뿐만 아니라 여러 사건에서 되풀이되는 검찰의 사형 구형과 법원의 무기징역 선고의 패턴, 이는 과연 불가피하고 정당한 것일까? 사형과 무기징역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 30년 가까이 사형이 집행되지 않다 보니 이제 사형은 사실상 무기징역과 다를 바 없다고들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외견상의 유사점과는 달리 실제 사형수들이 느끼는 것은 크게 다르다. 본인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니 언제라도 정책이 바뀌어 사형이 집행될 수도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도소 내에서도 한때 사형수가 마치 영웅처럼 취급받던 것과는 달리, 범죄자들 사이에서 정말 악질로 소외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특히, 사형수들의 불안감은 이들이 사형제도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헌법소원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물론 사형제도의 범죄 예방 효과가 확실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주(州)에 따라 사형제도의 존치 여부가 다르고 사형제도의 폐지나 부활을 경험한 주들도 있는 미국에서 관련 실증분석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사형제도와 범죄 예방 효과 간 확실한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사형제 폐지 논란도 수십 년간 답보 상태다.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의 규정이 ‘사형’을 명시하고 있어 헌법재판소는 계속 사형제를 합헌으로 인정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입법으로 사형제 폐지를 금지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사형제 폐지론이 진척되지 못한 것은 존치론도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인권 못지않게 피해자 및 유족의 인권도 생각해야 한다는 응보적 정의의 관점, 사형 판결을 받을 정도의 중범죄자는 재범의 위험이 크므로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여전히 우리 문화에서는 폐지할 경우 범죄 억제 효과를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사형제 존치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형제를 폐지하고 절대적 종신형, 즉 감형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사형 못지않게 절대적 종신형도 비인도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미국에서 죽을 권리를 요구하던 수형자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977년에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는 항상 무거운 주제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명을 해친 범죄자의 문제도 그렇지만, 그 범죄자를 사형 또는 종신형에 처하는 문제도 그렇다. 다만, 우리가 당면한 여러 문제의 뿌리로서 사형제도가 존치되는데도 사형 집행은 정지되는 이 모순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모순 속에 끊임없이 소모적인 갈등과 논란만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장윤기 사건 1심 판결 논란은 빙산의 일각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출처: 문화일보(2026-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