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겨울 들녘의 ‘우아한 손님’ 재두루미가 지난 5일 경기 철원군 동송읍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50여 마리가 겨울나기에 들어갔다. 시베리아에서 2000㎞ 이상 날아 비무장지대(DMZ)를 지나왔다. 북한군이 설치한 지뢰 폭발 사건 현장(서부전선)과 꽤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변함없이 군사분계선(MDL) 위로 날갯짓을 해준 게 다행이란 생각마저 든다.
회색 옷을 입은 듯한 재두루미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이다. 동아시아 일대에 분포돼 있는데, 개체 수가 1만 마리 정도다. 재두루미 외에도 하얀 몸통의 두루미, 쇠기러기, 독수리, 큰고니 등이 해마다 철원을 찾는다. 서부전선(파주·임진강)의 남쪽 민간인통제선 일대도 철새 서식권이다. 인적이 드물고, 먹이가 많은 논·습지 등이 있는 최적의 월동 장소다. 하지만 이곳들의 생태 환경이 장차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북한의 MDL 요새화 탓이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2024년 4월 요새화 작업을 시작했고, 지난해 3월부터 250㎞의 MDL 전 구간으로 확대했다. 불모지 조성은 마무리 단계, 철책·지뢰지대·전술도로는 40∼60% 진행됐다고 한다. 불모지는 군사적으로 시야 확보를 위해 식생을 제거해 땅을 드러낸 지대다. 도로와 장애물도 있다. 생태적으로 동식물의 서식처와 이동 경로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DMZ와 주변 지역은 출입 통제가 역설적으로 지켜낸 생물 다양성의 보고다. 남측 인접 지역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MDL 요새화가 군사·정치만이 아니라, 생태계에 몰고 올 여파가 심각하다.
사실 두루미는 최전선에선 썩 반가운 이름이 아니다. 북한 무인기 침투에 대비한 작전의 명칭이다. 지난 7월 말 미군 무인기를 북한 무인기로 오인해 격추할 뻔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때 발령된 경보가 두루미다. 비상 상황의 작전 경보에는 연상하기 쉽도록 통상 동물 이름(진돗개, 고슴도치 등)을 붙인다. 반갑지 않은 건 또 있다. AI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방역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남하한 철새 중에 고병원성 AI에 취약한 오릿과 조류가 지난해보다 2.9배나 늘어나서다. 축산 농가들이 긴장 상태다. 풍요와 낭만의 가을 들녘만은 아닌 듯하다.
출처: 문화일보(2026-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