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이야기에는 힘이 있습니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퍼뜨리면, 말한 사람은 ‘남들이 모르는 거대한 진실을 홀로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주는 자기애적 만족은 때로 사실 확인의 요구를 밀어냅니다. 일단 널리 퍼진 이야기는 믿는 사람들을 만들고, 그들은 서로의 믿음을 강화합니다. 논란은 진실을 밝히기보다 사회를 분열시키는 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양쪽 말이 다 일리가 있다”, “양쪽 모두에게 문제가 있다”, “감정적으로 보지 말자”라는 말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말들은 성숙한 판단의 출발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하고 책임을 따지는 일을 뒤로 미루면서, 판단하는 사람이 불편한 자리를 피하는 탈출구가 되기도 합니다. ‘균형’이라는 말은 공정하게 들리지만, 언제나 공정한 결과를 낳지는 않습니다.
가족 간 갈등이나 학교폭력, 직장 내 괴롭힘, 사회적 재난 이후의 책임 공방을 생각해 봅시다. 가해자는 계속 힘을 행사하고 피해자는 위축돼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양쪽이 조금씩 양보하세요”라고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양쪽을 똑같이 대하는 듯해도, 실제로는 이미 힘을 가진 쪽의 행동을 그대로 두고 피해자에게 침묵과 양보를 요구하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균형’은 불균형을 가리는 포장이 됩니다.
성숙한 균형 잡기는 양쪽의 말을 덮어놓고 다루지 않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모으고, 행위의 의도와 반복성, 당사자들 사이의 권력 차이, 실제로 발생한 피해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그 뒤에야 누가 무엇에 왜 어떻게 책임이 있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반면 회피적 균형 잡기는 한쪽으로 기울면서도 교묘하게 중립인 척합니다. 피해자의 고통과 사건의 파장을 외면한 채, 판단을 미루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변 사람이 늘 쉽게 피해자 편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해자의 미움이나 보복이 두렵고, 나섰다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침묵하면 죄책감이 들고, 말하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 갈등을 견디기 어려울 때 “양쪽 다 잘못이 있다”고 말하면 마음의 부담이 잠시 덜어집니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기에, 상황을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회피가 언제나 계산된 의도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과 무력감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물론 균형을 말하는 태도 자체가 근원적인 잘못은 아닙니다. 사태를 넓게 보고, 반대 의견을 듣고, 자신의 판단을 다시 검토하는 일은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다만 자신이 왜 중립을 택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을 더 알아보려는 신중함인지, 누군가를 실망시키거나 미움을 살까 두려워 판단을 피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분명한 의견을 숨기지 않고 내놓았다가 자신의 공격성이 드러날까 겁나서, 갑자기 말을 흐리기도 합니다.
반면에 모든 갈등을 선과 악의 대결로 단순화하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의 ‘편집증적-분열적 자리’라는 개념을 빌리면, 사람은 마음속의 불안과 죄책감, 공격성을 견디기 어려울 때 복잡한 갈등을 외부의 절대적인 ‘악’에 투사합니다. 특정 집단을 악의 근원으로 정하면 세상은 단순하게 보이고, 자신은 선한 편에 속한다는 만족감도 느낍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음모론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균형을 내세운 양비론과 선악의 이분법은 반대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양쪽에서 멀리 물러서고, 다른 하나는 한쪽을 악으로 몰아붙입니다. 그러나 둘 다 복잡한 사실과 책임을 차분히 견디기 어려울 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판단을 미루고, 다른 하나는 판단을 급히 내립니다. 어느 쪽이든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과정이 빠지면, 책임 있는 판단과 멀어집니다.
모든 갈등을 편 가르기로 몰아가서는 안 됩니다. 반대되는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믿는 바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신중함이 판단을 늦출 수는 있어도, 판단의 책임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한 쪽과 갑작스러운 피해를 당한 쪽을 “양쪽 모두 잘못”이라고 판단하면, 그 말은 균형이 아니라 이미 힘을 행사해 해를 끼친 쪽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부당한 개입이 됩니다.
책임 있는 균형은 양쪽 사이에서 정확히 중앙에 서는 일이 아닙니다. 사건을 더 면밀하게 보고, 자신의 두려움과 이해관계도 정직하게 살피며, 불편하더라도 판단과 책임의 자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균형은 물러나는 기술이 아니라, 복잡함 속에서도 결정하는 용기여야 합니다.
출처: 동아일보(2026-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