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북한군이 지난달 30일 개풍군에서 전술도로를 닦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북한은 2년 반 만에 70km 넘는 구간에 전술도로를 깔았다. 양회성 기자
이럴 줄 알았다. 북한군 지뢰에 우리 군 장병 3명이 중경상을 입은 지 열흘이 넘었지만 정부와 군은 소음만 시끄럽지 실질적인 대응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김여정이 ‘남측의 자작광대극’ ‘가차 없는 반격’ 운운해도 이재명 대통령은 국군의 날에조차 북한을 향해 대화를 회복하자고 말했다. 임기 내내 대화만 구걸하다 말겠다. 만약 다른 큰 이슈가 터지면 ‘지뢰 사건’은 잊혀질 게 뻔하다.
전례를 보면 북한군 내부는 축제 분위기일 듯싶다. “지뢰를 훌륭하게 매설해 괴뢰군 대대장을 포함한 적을 셋이나 제거하고 분계선에 얼씬 못 하게 겁을 주었다”는 명분으로 군인들을 포상할 가능성도 높다. 2008년 금강산에서 박왕자 씨를 사살한 19세 여군에게 국기훈장 1급을 주고 경계의 본보기라면서 군부대 순회강연까지 시킨 북한이다. 2년 반의 고된 ‘국경화 작업’으로 죽어 나간 북한 군인들에게 이번 사건은 “너희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며 사기를 올려줄 좋은 기회일 것이다.
물론 남북이 생각하는 군사분계선(MDL)이 다르니 이번 사건을 북한의 의도적 도발이라고 보기 애매한 면은 있다. 그렇다고 일부 주장대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가 보복이 될 수 있을까. 집권하자마자 확성기부터 뗀 정부가 다시 설치할 리도 만무하지만, 접경지 주민들 여론까지 생각하면 정답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 입은 국민 자존심은 어쩐단 말인가.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없으란 법도 없다. MDL 지역은 수풀이 무성해 우리는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최전방 일반전초(GOP) 경계 병력을 현 2만2000여 명에서 6000여 명까지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병력 자원 감소를 고려하면 어쩔 순 없겠지만, 지금도 이런데 나중엔 북한군이 MDL을 단체로 넘어와 야유회를 해도 모를 판이다.
이번 사건을 경계 병력 수천 명 시대에 맞추어 장기적으로 경계 환경을 바꾸는 시발점으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북한이 하는 대로 하는 방법도 있다. MDL에 바짝 붙여 북한처럼 동서를 연결하는 경계도로를 까는 것이다. 유엔사도 비무장지대 도로 설치는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북한은 이미 깔았으니 할 말이 없을 테고, 우리만 결심하면 된다.
적은 병력으로 넓은 지역을 경계하려면 시야가 확보되는 개활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가난한 북한도 MDL을 따라 폭 8∼12m 도로를 까는데 우리가 못 할 이유는 없다. 우리 경제력과 기술력이면 북한이 넘보며 침을 질질 흘릴 세계적인 도로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철조망이나 감시 카메라 같은 고전적인 경계 장비에 더해 경계도로에 인공지능(AI)과 연결된 자율주행 감시 차량이나 레일 차량을 올려 몇 분 단위로 정기 순찰을 돌게 하는 것이다. 아마 세계 최초 자율주행 전용 도로가 될 것이다.
북한처럼 장벽을 쌓는 것도 아니어서 통일을 포기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다. 통일 후엔 동서 연결 도로와 관광도로로 활용하면 된다.
당연히 건설 비용을 따져야 한다. 도입과 유지에 5조 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핵추진 잠수함을 한 척 더 산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비싼 무기도 북한 견제를 위해 필요하다. 안정적인 전방 안보와 군 경계 인원 축소, 장병 안전을 감안하면 MDL 총연장 238km에 깔릴 도로는 잠수함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전 구간에 닦을 필요도 없다. 시범 구간을 정해 1년에 20km씩만 깔아도 2038년이면 완성된다. 도로가 힘들다면 직경 3m 이상 용수관을 깔아 북부 물 부족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것도 생각해 봄 직하다.
환경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북한이 10중 경계선을 만들 때는 찍소리도 못 하다가 우리 군이 하면 “개구리 죽는다”고 시위하는 단체들이 나타날 것이다. 답은 명백하다. 안보보다 중요한 환경은 없다. 전국에 도로가 거미줄처럼 깔렸는데, 하나 더 건설한다고 환경이 망가질 한반도가 아니다.
함께 토론하면 도로 말고도 대응책이 나오지 못할 리 없다. 하지만 지뢰는 북한이 매설했는데 싸움은 우리끼리 하며 꼴불견을 만든다. 국회의원들은 상대 비방에만 머리를 짜내지 말고, 월 1000만 원 넘는 세비에서 100만 원씩만 걷어 중상 입은 장병을 후원해 보라. 모처럼 국민의 박수를 받게 될 것이다.
출처: 동아일보(2026-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