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논설위원

일러스트=박상훈
50대 후반인 아내가 며칠 전 건강검진을 하고 오더니 저녁 밥상에 돼지고기 수육을 내놨다. 육식을 즐기지 않는데 어쩐 일인가 싶어 물어보니 의사 선생님이 “전보다 근육량이 줄었다”며 “노년에 쇠약해지기 싫으면 고기와 계란을 부지런히 챙겨 먹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몇 년 전만 해도 채식을 건강 비결로 꼽고 지중해식 식단이 유행했는데 이제는 고기를 더 먹으라고 하니 의외”라고 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미국인을 위한 식이 지침 2025~2030’에도 건강을 위해 채식보다 육식을 늘리라는 내용이 들어 있어 화제가 됐다. 하루 단백질 섭취량을 체중 1㎏당 1.2~1.6g으로 하라고 권했는데, 이는 기존 권장량의 두 배에 가깝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같은 붉은 고기를 더 많이 먹으라”는 미 정부 발표에 ‘그동안 악마 취급을 받던 단백질이 사면을 받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미 정부의 지침 변화는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한 것이다. 특히 노년 건강과 육식의 상관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노년을 건강하게 보내려면 근육 유지가 필수인데, 그러려면 고기를 더 많이 먹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세계 곳곳에서 발표되고 있다. 중국 푸단대학이 70대 노인 2800여 명을 채식과 육식·채식 병행 식사군으로 나눠 6년간 관찰해 지난해 발표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육식을 병행한 노인군의 당뇨병·고혈압 등 만성 질환 없이 80 넘게 건강을 유지한 비율이 채식만 하는 노인들보다 1.78배 높게 나왔다. 고기 섭취가 근육 소실을 막은 것이 비결로 꼽혔다.
▶한국 질병관리청이 우리 국민의 육류 소비량 변화를 10년간 추적해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발표했다. 모든 연령층에서 육류 소비가 늘었는데, 그중에서도 70대 고령층의 소비 증가가 가장 높았다. 10년 전 70대 노인들은 하루 35.4g의 고기를 먹었는데 지난해 55.3g으로 56.2% 급증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젊은이들처럼 고기는 즐긴다는, ‘육식 노년’의 등장이다.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을 앞둔 나라에서 소득 증가 덕분에 고기를 더 먹게 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건강하기 위해 소식하고 채식하는 이도 적지 않다. 빵빵한 근육과 날씬한 허리로 살고 싶은 어르신들이 적극적으로 고기 소비를 늘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상가 고깃집도 주말이면 자식·손주와 함께 고기를 굽는 어르신들로 늘 붐빈다. 사랑하는 가족, 마음 맞는 벗과 함께하는 ‘즐거움 반찬’이 더해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2026.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