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평기 경찰청 생활안전교통국장
![[기고] 어르신을 지키려면 온 나라가 필요하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610/07.45934837.1.jpg)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 양육에 지역사회 모두의 도움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비단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말일까?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나이가 들면 걸음이 느려져 제시간에 길을 건너기가 어려워지고, 멀리 떨어진 횡단보도를 이용하기보다는 무단횡단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기 마련이다. 운전도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자부하며 살아왔지만, 늘 운전하던 익숙한 길에서 실수하는 일이 잦아지고, 페달 오조작 사고 뉴스가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쯤 되면 노인은 온 마을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지켜줘야 하는 게 아닐까.
노인 인구는 해마다 늘어 올 8월 기준 전체 인구의 약 22%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2024년에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노인 인구 증가는 평균수명 연장을 의미하기에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교통안전 측면에서는 관련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노인 교통안전 정책의 중요성이 잘 드러난다.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67%로, 노인 인구 비율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다. 노인 운전자가 유발한 교통사고 사망자 역시 전체의 33%를 차지하는데,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중 노인이 16%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위험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같은 통계는 우리가 노인 보행자를 ‘교통사고로부터’ 지켜주고, 노인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내지 않도록’ 살피며 배려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부는 노인이 안전하게 통행하고 운전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노인 통행량이 많은 횡단보도의 보행신호 시간을 연장하고, 노인 보호구역을 확대해 무단횡단 방지시설·차량 보도침입 방지시설 등 보행안전시설을 보강하고 있다.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어르신에게는 교통비를 지원하며, 오조작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설치 지원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고령자 교통안전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작은 기다림과 배려가 어르신을 살리는 첫걸음이다. ‘3·3·3 운전법’을 기억하자. 운전 중에는 ‘3번 더’ 주변을 살피고, 횡단보도 앞에서는 ‘3초 더’ 기다리며, 노인 보호구역 등에서는 ‘30km/h 이하’로 서행하자. 어르신의 안전한 운전도 도와드려야 한다. 단순히 ‘운전하지 말라’ ‘면허를 반납하라’는 식의 금지 위주 정책은 자칫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신체 및 인지능력이 유지되는 어르신이라면 건강 상태와 조건에 맞는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통해 오래오래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노인 교통안전은 특정 연령층만을 위한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나이가 들고, 행동이 느려지며, 운전하기 힘들어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노인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사회는 결국 모두가 안전한 사회다. 경로의 달 10월을 맞아 노인 교통안전에 조금만 더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출처: 한국경제(2026.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