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논설위원

이재명 대통령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손봉기 대법관 제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대법관 재제청을 요구한 데 대해 조 대법원장이 “헌법적 근거와 사유가 없다”며 거부한 뒤 벌어진 청와대와 여당의 반응이 민망할 정도로 볼썽사납다. 여권은 조 대법원장의 재제청 요구 불응이 헌법 위반적 행태라며 맹비난하고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희대의 착란” “희대의 사법 내란” 등 품격 없는 언사로 사퇴와 축출을 촉구·약속하지만, 거꾸로 이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가 위헌 소지가 농후하다. 이 대통령 명의로 조 대법원장에게 8월 28일 보낸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 공문은 ‘헌법 제104조 제2항에 따라 국회에 임명동의안 제출을 하지 않기로 했다’가 전부인데, 헌법의 그 조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재제청 요구 근거는 찾을 수 없고, 외려 대법원장의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대법관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야 함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 대통령은 해당 헌법 조문을 대통령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국회 동의권보다 위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삼권분립은 온데간데없고 대통령 임명권이 우월하다는 인식의 바탕엔 선출권력 우위론이 있다. 하지만 헌법 어디에도 그렇게 해석할 근거는 없다. 반대로 헌법 조문은 절차상 큰 하자나 후보의 특별한 흠결이 없는 한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 동의를 얻은 대법관 후보를 대통령이 거부하지 못한다는 수동적·형식적 임명권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법원장 제청 대법관 후보에게 불만이 있어도 이 대통령처럼 선을 넘지 않은(혹은 못한) 이유는 위헌 소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선출권력 우월론은 자칭 ‘국민주권정부’ 지도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얕은 인식만 드러낸다.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론과 그를 구체화한 미국 및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은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상호 독립과 견제, 즉 삼권의 균등에 토대를 두고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선출되지 않는 사법부에 삼권의 한 축의 권력을 부여한 것은 사법부까지 선거로 뽑거나 대통령 또는 다수당의 영향을 받으면 공정한 재판과 법치주의를 허물고 일당독재로 치달아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만다고 우려한 때문이다.
출처: 문화일보(202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