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엄주신

커뮤니티

자유게시판

[만물상] 헌책방의 'AI 퇴직금'?

  • 관리자
  • 26.10.03
  • 1

어수웅 논설위원

 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엊그제 일본 니혼TV가 기이한 사재기 열풍을 보도했다. 도쿄 진보초 등 일 전역의 헌책방에 정체불명의 주문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인기 품목인 만화나 문학이 아니었다. ‘에도 시대의 장신구’ ‘다이쇼 시대 판례집’ 등 먼지만 쌓이던 사료와 전문서였다. 무려 수만 권이 싹쓸이됐고, 매출이 5배 뛴 서점이 속출했다. 배송지는 오카야마의 물류센터를 거쳐 미국으로 이어졌지만, 주문자는 오리무중이었다.

 

▶유럽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5월 아일랜드의 한 헌책방에는 흥정 한 번 없이 5000권의 대량 주문이 들어왔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근대 행정법 주석서’나 ‘1970 운전면허 시험 안내서’ 같은 옛 책까지 팔려나갔다. 외신들은 유럽 전역에서 무려 300만권에 달한다고 썼다. 최종 목적지는 역시 미국의 대형 물류창고. 그곳엔 유압식 절단기와 공장형 스캐너가 기다리고 있었다. 책이 통째로 잘려 낱장으로 분해됐고, 고속 스캔 후 폐지 파쇄기로 직행했다.

 

▶이 ‘무자비한 도살’의 주범은 글로벌 AI 기업이었다. 저작권 소송 중에 드러난 엔스로픽의 비밀 프로젝트 ‘파나마’가 대표적이다. 챗GPT 등장 이후 인터넷이 ‘AI 슬롭(쓰레기 데이터)’으로 오염되자, 이들은 실물 종이책으로 눈을 돌렸다. 인간이 검증한 옛 책이야말로 AI 오염률 0%의 최상급 학습 자료이기 때문이다. 엔스로픽뿐만 아니다. 미 탐사 매체가 위치 추적기를 넣어 헌책 경로를 추적한 결과, 아마존의 한 AI 데이터 시설에 도착했다. 이들은 “종이책을 사서 1:1로 디지털화하고 원본을 폐기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라는 미국 법의 허점을 교묘히 노렸다.

 

▶미 빅테크 기업이 한국 중고 서적까지 사들인 정황은 아직 포착되지 않았다. 하지만 네이버 등은 블로그와 지식iN 등을 통해 이미 막대한 한국어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수집 형태만 다를 뿐, 한국 AI 기업도 불법 공유 사이트 크롤링부터 헐값 데이터 계약까지 창작자들의 지식 자산을 AI의 땔감으로 삼는다는 무임승차 논란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최첨단 AI가 정작 자신을 똑똑하게 만들기 위해 인류가 쌓아 올린 종이책 문명을 ‘사료’와 ‘땔감’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한 아이러니다. 인류 역사에서 책을 파괴한 것은 언제나 전쟁과 미개함, 혹은 오만한 권력이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그랬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대화재가 그랬다. 헌책방 주인의 손에 쥐어진 뭉칫돈은 뜻밖의 횡재일까, 아니면 AI가 주는 마지막 퇴직금일까.

 

출처: 조선일보(2026.09.30.)

게시판 목록
NASA 과학자 "예수 탄생 알린 '베들레헴의 별' 미스터리 풀었다"
일본서 한 학기, 미국서 한 학기… 글로벌 현장서 배우는 태재대학교
"명문대 졸업장 유효기간 10년… AI시대 이끌 1% 인재 키운다"- 태재대 염재호 총장
교회 및 중직자가 구비해야 할 교회법 책
초월선교회란?
칭찬받는 장로 - 엄동규 장로
엄하고 무서운 사람(엄주신 장로) - 임종만 목사(고신 증경총회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엄주신 장로 - 엄묘순 권사
3代 장로를 배출한 가문(家門)
[만물상] 헌책방의 'AI 퇴직금'?
[신문은 선생님] [아는 만큼 보이는 스포츠] 23세 넘으면 못 뛴다… IOC-FIFA 신경전에서 비롯된 규칙이죠
나이는 50대, 무릎은 60대… 근육 키워 ‘관절나이’ 회춘[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체험]
[횡설수설/김재영]알래스카 가스전
[횡설수설/우경임]‘스마트폰 이모님’
‘성실한 외국인’에 도달하기 어렵게 하는 것[카를로스 고리토 한국 블로그]
물고기 뼈로 들여다본 선사인의 바다[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52〉
빚의 역습[오후여담]
[천자칼럼] 대북 상응조치
“입은 있지만… ” 증권가 CEO들 ‘국감 속앓이’[소소한 복도통신]
Q : 50세 갱년기 다가오니 짜증 늘고 무기력감도 커지는데[마음상담소]
[천자칼럼] 멸칭의 사회학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