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영국은 1976년 국채가 안 팔리고 파운드화가 폭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가혹한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39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곧바로 기준금리부터 15%로 끌어올렸다.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9%에서 6%로 낮추기 위해 복지 예산과 국방비도 대폭 깎았다. 정부 지출을 늘려 고용을 유지해온 영국식 케인스주의가 파산한 순간이었다.
캐나다도 1995년 국채 차환 과정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미국 국채보다 4%포인트 높은 금리에도 소용없었다. 정부 부채가 GDP 대비 100%를 넘어서자 캐나다달러화는 “페소보다 못하다”고 조롱받았다. 외국인 투자자도 대거 이탈했다. 위기에 몰린 캐나다 정부는 공공 지출을 20% 삭감하고 공공부문 인력도 15%(4만5000명)를 줄이는 초강수를 뒀다. 연쇄 파업이 벌어지고 퀘벡주의 분리 독립 움직임까지 겹쳐 국가 전체가 몸살을 앓았다.
경제위기의 경고음은 국채시장과 외환시장에서 먼저 울리는 경우가 많다. IMF는 실질 국채 금리가 실질 GDP 성장률보다 높아지면 위험 신호로 본다. 총재정조달수요(당해 연도 재정적자+만기 도래하는 부채 상환액)가 GDP의 20%를 넘는지도 핵심 지표로 삼는다. 미국은 이 지수가 26%에 육박한다. 재정적자가 GDP 대비 5.8%인 데다 올해 국채 차환 발행 규모가 GDP의 20%에 이른다. 일본은 이 지수가 무려 32%에 달해 위험수위다.
글로벌 국채 금리의 고공행진은 위험 신호다.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인공지능(AI) 투자에 필요한 자금 조달 비용이 급증해 미 증시 기술주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미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5%를 넘나들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찬바람이 분다. 이번 사태는 겉으로는 고금리 충격처럼 보이지만 그 밑에 숨겨진 본질은 과다 부채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2007년 175조 달러였던 전 세계 부채는 2025년 말 348조 달러로 늘어났다. 20년도 채 안 돼 세계 부채가 두 배로 불어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사태를 빚으로 때워 넘긴 후유증이다. 과도한 부채를 안은 상태에서 금리가 오르면 더 높은 금리로 빚을 내 빚을 갚아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지금 밀려드는 쓰나미를 정확히 표현하자면 고금리의 역습이 아니라 빚의 역습이다.
출처: 문화일보(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