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관광학과 겸임교수
■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한국 식탁의 갈림길

연휴를 맞아 미국에서 한국을 찾은 지인이 추석 내내 끊이지 않는 명절 음식에 혀를 내둘렀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먹는데, 다들 날씬한 게 신기해.” 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에게서 들으니 어리둥절했다. 지인은 미국에서 날씬한 편이었는데, 한국에 오니 살을 빼야 하는 사람으로 분류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긴 거리에서 마주친 비만 인구에 적잖이 놀랐던 첫 미국여행을 떠올리면, 그의 눈에 한국 사람들이 날씬하게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된다.
비만의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인 비만의 국제 기준을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아시아인은 같은 BMI에서도 당뇨와 심혈관 질환 위험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서, 한국에서는 BMI 25 이상을 성인 비만 기준으로 분류한다. 같은 몸이 서울에서는 비만이고 뉴욕에서는 비만이 아닐 수 있는 이유다. 외국인의 눈에 한국인이 상대적으로 날씬해 보이는 데에는 채식 위주의 식문화도 영향을 미친다. 이민자 연구를 보면 식습관이 바뀔 때 몸은 유전자보다 빨리 변한다. 일본을 떠나 하와이로, 다시 캘리포니아로 건너간 일본계 이민자들도 고향에서 멀어질수록 비만과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아졌다. 멕시코 산악지대에 사는 피마 인디언은 마르고 당뇨도 드물지만, 미국 애리조나의 피마 인디언은 비만과 당뇨가 매우 흔한 집단으로 꼽힌다. 유전자는 같은데 몸이 다르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몸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로 다시 태어난다. 장 점막은 며칠, 피부는 한 달, 적혈구는 넉 달을 주기로 새로 만들어진다. 새 세포의 재료는 오늘 먹은 음식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 오늘의 밥상이 내일의 몸이 된다.
미국은 이 변화를 먼저 경험했다. 1980년 무렵 15%였던 성인 비만율은 지금 40.3%에 이르고, 과체중까지 합치면 72.4%다. 뒤늦게 미국 정부는 식탁의 변화를 되돌리는 새로운 식생활 지침을 내놓았다. 올해 1월 ‘진짜 음식’을 강조하며 채소·과일·통곡물·단백질 등 영양밀도가 높은 식품을 중심으로 먹고, 고도로 가공된 식품과 첨가당 등을 줄일 것을 권고했다. 일부 주에서는 저소득층 식품 지원금으로 탄산음료와 사탕을 구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도 도입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비만율이 낮았던 유럽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중해 식탁의 나라 이탈리아의 성인 비만율은 7%로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낮다. 그런데 같은 나라의 7∼9세 아이들 중 30% 이상이 과체중이거나 비만이다. 유럽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오죽하면 WHO 관계자가 지중해 식단은 사라지고, 그 식단에 가장 가깝게 먹는 아이들은 오히려 스웨덴에 있다고 개탄했을까. 식단은 유전자보다 일상 생활습관에 가깝다. 가르치고 함께 먹는 일이 멈추면, 한 세대 만에 끊긴다.
한국 역시 ‘많이 먹는데 날씬한 나라’라는 이미지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중이다. 밥을 중심으로 국과 나물, 생선을 나누어 먹던 가벼운 밥상은 편의점 도시락과 배달 음식이 일상에 들어오면서 달라졌다. 성인 비만율은 2024년 34.4%로, 10년 전 26.3%에서 올랐으며, 특히 30대 남성은 53.1%, 40대 남성은 50.3%로 비만율이 절반을 넘는다. 미국이 1980년에, 이탈리아의 아이들이 지금 서 있는 그 갈림길에 우리도 서 있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한 상 가득 차려내고 많이 드시라고 권하는 것은 다정한 안부이자 최고의 대접이었다. 음식이 넘쳐나는 지금, 그 오랜 애정 표현은 살 빼라면서 음식을 더 권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과거의 넉넉함이 ‘양’과 ‘채움’이었다면, 과잉의 시대의 넉넉함은 ‘질’과 ‘조절’로 다시 쓰여야 하지 않을까. 천고마비의 계절, 이 고비를 또 어떻게 넘기나.
출처: 문화일보(2026-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