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 백영고 교사(유튜브 ‘오분 만에 마스터하는 국어’ 운영)

● 꺼내 보기
‘오지랖 넓은 이웃 덕분에 살았다’, ‘선한 오지랖이 필요한 사회’.
뉴스에서 이런 표현을 한 번쯤은 보셨을 겁니다. 오지랖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요. 놀랍게도 원래는 ‘참견’이라는 의미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오지랖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겹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입니다. 한복 저고리나 두루마기를 떠올려 보세요. 왼쪽 자락(앞자락)이 오른쪽 자락(뒷자락)을 덮으면서 앞을 여미게 되어 있지요. 바로 그 앞자락이 오지랖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쩌다가 오지랖이 참견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여기서 관용구 ‘오지랖이 넓다’를 살펴봐야 합니다. 앞자락이 지나치게 넓은 옷은 그 옆에 놓인 다른 옷까지 덮어 버리게 되죠. 남의 영역까지 제 옷자락으로 덮어 버리는 모습. 그것이 남의 일에 함부로 끼어드는 태도와 꼭 닮아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전에서도 ‘오지랖(이) 넓다’를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면이 있다’라고 풀이하고 있는 것이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원래 참견의 의미는 ‘넓다’와 짝을 이뤄 사용될 때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오지랖 좀 부리지 마’처럼 ‘오지랖’ 자체가 참견의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말의 주인인 언중이 그렇게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미가 딸려 온 셈이지요.
● 생각하기
요즘처럼 개인화가 극대화된 시대에는 오히려 적당한 오지랖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내면 참견이 되고, 상대의 상황과 필요에 맞추어 말하면 배려가 됩니다. 여러분의 옷자락이 남을 덮어 누르는 거추장스러운 오지랖이 아니라 추운 이의 어깨를 덮어 줄 수 있는 따뜻한 오지랖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동아일보(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