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경 기자
3줄 요약
재제청 공문에 명확한 근거와 사유 제시 요구
절차적 흠결 존재 사유 수긍하기 어렵다
현행 헌법상 청와대 재제청 강제 불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를 거부한 조 대법원장은 국정감사 등을 통해 대법관 제청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뉴스1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대법관 재(再)제청 요청에 대해 긴 침묵을 깨고 ‘불가’ 입장을 밝힌 것을 두고 일각에서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 위한 결기로 보기도 하지만 법원 내부에서는 고도의 법률적 대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가 제대로 허(虛)를 찔렸다는 것이다.
조 대법원장이 지난 22일 낸 첫 메시지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서 하는데 재제청 공문에 사유와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청와대는 입장문을 통해 “국민들이 다 아는 반려 사유를 유독 대법원장만 ‘공문에 그 내용이 없으니 모르겠다’는 의도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법률행위 중에는 반드시 형식을 갖춰야만 효력이 발생하는 ‘요식 행위’(要式行爲)가 있다. 약속어음에 만기나 지급장소 등 법이 정한 사항을 적지 않으면 효력이 없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조 대법원장이 첫머리에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서 한다’는 헌법 제82조를 언급한 것은 재제청 요구 역시 요식 행위여야 함을 언급한 것이다. 공문에 손봉기 후보자가 자격 미달인지, 절차 흠결이 있는지를 적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문에도 없는 사유를 청와대가 ‘국민들이 다 안다’고 하면 제대로 된 답이 될 수 없다. 조 대법원장은 이어 “공문의 문언상 명확한 근거와 사유가 제시되어야 그 효력에 다툼이 없고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행정절차법 제23조도 처분을 할 때는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유 없는 과태료나 철거명령을 납득할 국민은 없다. 재제청 요구도 이유를 적어야 대법원이 다음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추가 입장문에서 ‘재제청 요구 공문에 헌법 104조 2항, 법원조직법 41조 2항에 따라 국회에 임명동의안 제출을 하지 않기로 적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조항들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것이다. 결국 ‘임명하지 않겠다’는 입장의 동어 반복일 뿐 왜 재제청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은 아니다.
청와대는 또 후보자들에게 전화해 개별적으로 사퇴 의사를 물은 게 중대한 절차적 흠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물러나라는 강요가 아니라 후보들이 동의하면 새로 대법관후보추천위를 열어 다시 진행하겠다는 의사 타진이었다. 법원조직법에 후보 추천이 이뤄지면 추천위가 해산되도록 돼 있다. 그래서 조 대법원장이 추가 메시지에서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제청과정에서의 절차적 흠결’이 존재한다는 사유는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기초해 수긍하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대면협의가 없었다’는 부분도 역시 서면 제청된 김성수 후보자를 임명했으니 더는 주장하기 어려워졌다.
청와대가 재제청 요구 공문에 정말로 적고 싶은 내용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대법관 후보자의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명권은 현행 헌법상 대법원장 임명 제청권의 강력한 제약을 받는다.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로 대법원을 채우는 코트 패킹(court-packing)을 막기 위한 장치다. 청와대가 주장하는 재제청 사유들은 조 대법원장의 법리를 넘어서기 어렵다. 현행 헌법상 청와대는 제청된 후보자의 임명 여부만 결정할 수 있을 뿐 재제청을 강제할 수는 없다. 여권이 조 대법원장 탄핵, 내란 사건 특별수사본부를 거론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외통수에 갇혔다는 방증이다.
한 현직 고위급 판사는 “설령 탄핵심판, 권한쟁의심판이 열리더라도 밀릴 게 없다”고 했다. 조 대법원장의 법리적 대응이 가져올 결과를 법조계가 흥미진진하게 주목하고 있다.
출처: 조선일보(2026.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