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규 논설위원

일러스트 이철원
핀란드 서부 에우라요키 올킬루오토에는 지하 427m 아래 ‘온칼로’라 불리는 저장 시설이 조만간 본가동을 앞두고 있다. 핀란드어로 ‘숨겨진 동굴’을 뜻하는 이 시설은 세계 최초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영구 처분장. 화강암 지층이 외부 유출을 막는 이 지역을 고르는 데만 17년이 걸렸다. 그만큼 정부가 안전을 위해 공을 들였고, 에우라요키 시의회도 압도적 찬성으로 정부 결정을 받아들였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쓰레기 소각장 ‘아마게르 바케’는 오염 물질을 걸러내는 안전 시설에다 주민 편익 시설까지 갖춰 지역 명소로 탈바꿈한 사례다. 소각 시설 지붕에 인공 언덕을 만들고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3년 전 이곳을 찾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마포자원회수시설(소각장)도 시민들이 사랑할 수 있는 시설로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포소각장은 주민 반대와 소송까지 겹쳐 사실상 건립 계획이 철회된 상태다.
▶이런 기피·혐오 시설 반대는 마포만의 문제도 아니다. 아직도 ‘결사 반대’를 외치는 플래카드가 전국 곳곳에 걸려 있다. 지역 국회의원이나 기초의회 의원들도 반대부터 하고 본다. 그런데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국가 기간 전력망 사업인 ‘신고창변전소’ 최종 부지로 전북 고창군 성송면이 선정됐는데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변전소 유치에 나선 첫 사례였다. 지역 주민들을 움직인 건 지역 소멸에 대한 위기감이었다. 심각한 인구 감소 문제에 직면하자 지역 발전을 이끌기 위해 변전소를 택한 것이다.
▶청송교도소가 있던 경북 청송 주민들은 교도소 이름을 바꿔달라고 30년 가까이 요구했다. 지역 이미지를 흐린다는 이유였다. 청송교도소는 결국 2010년 경북북부제1~3교도소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랬던 청송군이 최근 교정공무원 관사, 교육시설 등을 유치해 ‘교정 타운’을 만드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역시 지역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최근 법무부가 교정시설 부지 공모에 들어가자 충북 제천시와 보은군이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경북 영덕군도 검토에 나섰다고 한다. 지난해 대구 군부대 이전 때는 경북 영천시와 상주시, 대구 군위군이 유치전을 벌여 군위군이 최종 선정됐는데 당시 상주시민 1만여 명이 유치 서명에 참여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인구가 줄어 지역 소멸 위기감이 커지면서 교도소, 군부대 등 이른바 ‘기피 시설’이 ‘선호 시설’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반가우면서 또 한편으론 걱정도 되는 세태 변화다.
출처: 조선일보(202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