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논설위원

일러스트=이철원
매년 가을이면 부산에 내려갔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취재하던 영화 담당 시절의 이야기다. 낮에는 남포동의 어두컴컴한 상영관에 있었지만, 밤이 되면 달맞이 고개로 달려갔다. 달빛 흘러넘치는 미포와 청사포는 그 자체로 거대한 선술집이었다. 하늘에도, 바다에도, 소주잔 안에도 달이 있었다. 영화 담당을 마친 뒤에도 가을이 되면 마음이 들썩였다. 부산병(病)이었다.
▶하지만 그 무렵 만난 부산 친구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청년들은 일자리 찾아 수도권으로 떠났고, 도시에는 ‘노인과 바다’만 남았다는 자조가 팽배했다. 실제로 부산은 대한민국 7대 특·광역시 중 가장 먼저 초고령 사회(65세 이상이 20% 이상)에 진입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어두운 그늘이 도시를 짓누르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부산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부산의 매력을 발견한 외국인들이 폭발적으로 몰려든 덕분이다. 지난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64만명으로 역대 최고치였는데, 올해는 기세가 더 무섭다. 8월 초에 이미 300만명을 돌파했다. 방문객 수보다 눈에 띄는 건 지출 규모다. 7월까지 외국인 카드 지출액만 7400억원을 넘어서며 전년 같은 기간보다 60% 이상 급증했다. 대만, 중국, 일본, 미국 순으로 많이 찾는다는데, 미국 시애틀 출신 한 관광객은 소셜미디어에 이런 글을 남겼다. “부산에서 돌아왔는데 벌써 ‘부산병(Busan Disease)’을 앓고 있다. 당장이라도 또 가고 싶다.”
▶외국인이 꼽는 부산의 가장 큰 매력은 반전이다. 해변 따라 초고층 마천루가 병풍처럼 둘러선 도심 바로 옆에, 피란 시절의 삶과 활력이 교차하는 자갈치 시장과 산복도로 골목길이 공존한다. 서울의 세련됨과는 또 다른, 바닷바람 닮은 거칠면서도 정겨운 사람 냄새가 있다. 서울에는 없는, 아니 세계적으로 드문 바다와 마천루의 조합. ‘아시아의 마이애미’라는 예찬이다.
▶가수 최백호는 ‘부산에 가면’에서 노래했다. “부산에 가면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 고운 머릿결을 흩날리며 나를 반겼던 / 그 부산역 앞은 참 많이도 변했구나...” 예전의 부산병이 고향 그리워하는 향수병이었다면, 지금의 부산병은 외국인들의 러브레터다. 단순히 ‘이번 여행 좋았다’는 감상을 넘어, ‘앓고 있다’고 말하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노인과 바다’라 불리던 도시는 이제 세계 청춘들의 활력이 넘실대는 국제 도시로 거듭나는 중이다. 외국인들이 함께 그리워하는, ‘반가운 상사병’이다.
출처: 조선일보(2026.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