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보이사·전문의
■ 마음상담소

게티이미지뱅크
▶▶ 독자 고민
감정 소모가 너무 많이 돼 힘듭니다. 저는 스스로 대문자 F라고 느낄 만큼 공감을 잘하는 편입니다. 그만큼 대화하다 보면 쉽게 지치는데, 특히 중간에서 조율하거나 말을 전달할 때 상대 입장을 신경 쓰느라 감정 소모가 큽니다. ‘나는 로봇이다’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거리를 두면 덜 힘든데, 이렇게 감정을 억누르는 게 맞는 방법인지, 제 성향 자체를 바꿔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A : 타인의 마음 미리 예측해선 안돼… 공감과 책임 구분해야
▶▶ 솔루션
공감과 책임을 구분해야 합니다. 공감이 풍부한 사람들은 상대의 표정과 말투, 침묵의 의미를 빠르게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생각해볼 점이 있습니다. 내가 느낀 상대의 감정은 실제 감정과 얼마나 일치할까요.
우리의 뇌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직접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대신 표정, 목소리, 과거 경험, 관계를 재료로 상대의 마음을 추론합니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마음이론’이라고 합니다. 상대의 마음에 직접 닿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상대의 마음 상태에 대한 그럴듯한 가설을 세우는 것이지요. “저 사람이 서운할 것이다”, “지금 나에게 화가 난 것 같다” 같은 생각은 읽어낸 것이라기보다 상상하고 유추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감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이 예상이 빠르고 생생해서, 비슷한 감정과 신체 반응이 마치 내가 겪은 것처럼 재현되곤 합니다. 상대가 서운할 것 같으면 그 서운함을 대신 겪고, 화가 난 것 같으면 머릿속으로 이미 화를 달래고 있습니다. 실제 감정은 하나인데 상상한 감정 여러 개가 더해지는 셈입니다. 감정 소모가 큰 이유는 공감을 많이 해서라기보다, 상상한 감정까지 모두 반응하고 책임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중재나 전달 역할을 맡게 되면 특히 그렇습니다. A의 말을 전하며 B가 상처받을까 걱정하고, B의 말을 전하며 A의 반응을 염려합니다. 현실에서 오간 감정보다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한 감정이 훨씬 많아지는 것입니다. 우울 경향이 높을수록 공감은 ‘모두를 불편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죄책감으로 바뀌기 쉽습니다.
“나는 로봇이다”라는 자기암시가 잠시 도움이 되는 것은 과부하된 감정 예측을 일시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응급처치일 뿐 근본적인 해결은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공감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책임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감정이 걱정될 때는 “이것은 확인된 사실인가, 내가 예상한 것인가”를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 추측하는 대신 “제가 이렇게 전하면 어떻게 느끼실까요?”라고 직접 확인하는 것도 좋습니다. 설령 상대가 실제로 서운해하더라도 그것을 이해하는 것과 책임지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내게는 정중하고 솔직하게 말할 책임이 있을 뿐, 상대가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만들 책임까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한 공감은 물에 빠진 상대와 함께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내 자리를 단단히 지킨 채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출처: 문화일보(2026-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