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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 놓는 용기… 강요보다 이해가 먼저다[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 관리자
  • 26.09.25
  • 2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명예교수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가 늘고 있다. 사고가 날 때마다 “운전면허를 반납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오랜 시간 운전해온 사람에게 면허증을 내려놓는 일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이달 초 통역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제1회 전북사잇길청년인권영화제에서 전세훈 감독의 단편영화 ‘늙은 면허’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청년의 시선으로 노인의 운전 문제를 다룬 이 작품은 사회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기보다 면허를 내려놓아야 하는 노인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인 80대 병호(임형태 분)는 40년 경력의 택시 운전사로 은퇴 후에도 정정하다. 호흡하듯 운전하며 살아왔지만 최근 들어 주차가 똑바로 되지 않는다. 면허를 갱신하는 과정에서는 인지기능이 저하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요한다. 그에게 면허증은 단순한 신분증이 아니라 자존심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이 20대 취업준비생인 손녀 유진(김수정 분)의 눈을 통해 스크린에 펼쳐진다.

 

2024년 7월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68세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일방통행로를 역주행해 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법원은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제동페달로 착각해 밟은 과실로 사고가 났다고 판단했다. 이 사고는 한국 사회에 고령 운전자의 안전 문제를 무겁게 던졌다.

 

일본에서는 2019년 도쿄 이케부쿠로(池袋)에서 당시 87세 운전자의 차량이 폭주해 30대 어머니와 세 살배기 딸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이 사고는 일본에서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과 제도 개선 논의를 확산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운전자는 금고 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뒤 2024년 10월 93세로 옥중 사망했다.

 

가와이 하야토 감독의 영화 ‘면허 반납!?’의 70세 액션 스타 난조. ‘면허 반납!?’ 제작위원회 제공크게보기

가와이 하야토 감독의 영화 ‘면허 반납!?’의 70세 액션 스타 난조. ‘면허 반납!?’ 제작위원회 제공

올해 6월 고령자의 면허 자진 반납을 소재로 한 가와이 하야토(河合勇人) 감독의 영화 ‘면허 반납!?’이 개봉하기도 했다. 70세 액션 스타 난조(南条·다치 히로시 분)가 오해로 인해 면허를 반납할 위기에 처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코미디다.

 

난조가 면허 반납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타며 액션 연기를 하고 싶은 난조에게 면허 반납은 곧 배우 인생의 변화를 뜻했다. 가와이 감독은 “이 작품은 결코 면허를 무조건 반납하라는 영화는 아니다”라며 “지금을 즐기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개봉 31일 만인 7월 21일 기준 관객 52만9000명, 흥행 수입 6억9800만 엔(약 60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50대 이상 중고령층에서 화제를 모으며 9월 현재까지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관객들은 유쾌하게 웃으면서도 “면허 반납 시기를 내 문제로 고민하게 됐다”는 진지한 반응을 보였다. 영화의 화제성에 힘입어 고령자의 운전 문제 등을 다룬 서적과 전문가 조언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면허 반납을 10년 미루는 70세부터의 운전학’의 저자 호리카와 에쓰오(堀川悦夫) 사가대 명예교수는 ‘10년 후 사고를 48% 줄이는 훈련’을 권한다. 이는 운전을 안전하게 계속할 방법과 운전을 그만둔 뒤의 대체수단을 함께 찾아가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인지기능의 기반이 되는 시각과 청각기능 등을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적절한 치료나 보조기구를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늙은 면허’의 전세훈 감독은 “영화를 통해 자존심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고령자 면허 반납을)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녀 역의 김수정 배우는 영화 속 문제가 자신의 가족 문제와도 같았다고 했다. 실제로 친할아버지가 고집을 부리며 면허 반납을 거부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영화를 준비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취업 준비 중인 손녀와 면허 반납을 강요받는 할아버지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할아버지, 용기를 내자. 나도 용기를 낼게’라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성장한 게 아닐까요?” 그는 “우리라고 노인이 되지 않는 법은 없잖아요?”라고 덧붙였다.

 

한국과 일본의 두 작품은 문제를 곧바로 해결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영화를 통해 고령 운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넓어지고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 연휴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헤아리며 고령 운전 문제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말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따뜻한 소통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출처: 동아일보(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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