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이천 가마 키운 뒤 양주에 공방 日 가스 가마 처음 들여와 실험

아프리카 전시 본 뒤 도조 몰두 경제적 안정 뒤 도자회화에 빠져

성공의 순간에 실패 향해 도전 진정한 예술가로 끊임없이 변신

도예가 신상호(1947∼ )의 개인전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8세에 도자기 가마를 운영하기 시작해 78세인 현재까지 60년간 제작한 어마어마한 양의 도자 작품이 전시 중이다. 1990년대부터 수집한 아프리카의 공예품과 전 세계의 다양한 공구 등 그가 평생 모은 수집품도 함께 선보인다. 1000평 넘는 공간에 3000점 넘는 작품과 수집품이 진열되었으니,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그 양도 대단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전시된 작품의 변화무쌍함이다. 백자·청자·분청사기 같은 전통 도예에서 거대한 도조(도자 조각), 건축 외장재로 쓰였던 색색의 도자 타일, 흙을 평면에 붙여 구운 도자 회화까지. 그는 평생 어떻게 이 다양한 작업들을 다 할 수 있었을까?

신상호는 1965년 홍익대 도예과에 입학한 해에 이미 경기도 이천에서 가마를 운영했다. 시작은 반항심에서 비롯된 가출이었다. 부모가 시키는 건 뭐든 반대로 향하던 시기, 법관이나 의사가 되라는 부모에게 저항해 찾아간 곳이 흙을 만지는 노동의 현장이었다고. 40일 만에 아들을 찾아낸 아버지는 그 일이 그렇게 하고 싶으면, 가마를 사 줄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살라고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지지 않으려고 신상호는 18세부터 가마를 키워가며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이천 가마와 서울 홍익대 사이 2시간 반 통학 거리를 오가며 그가 배운 것은, 대학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온갖 노하우들이었다. 당시 옹기장이로 치부되던 이천의 장인들에게 직접 연마한 전통 기술이었다.

그렇게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으니 고난이 따라도 감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전통 도자에서 출발해 끊임없이 자기 변신을 꾀한 원동력은 어떻게 설명될까? 그의 생애를 가만히 보면 참 특이한 점이 있다. 그는 이상하리만큼 운이 좋았고, 그래서 매번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는데, 바로 그럴 때마다 그 성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사실이다.

이천에서 양주로 공방을 옮긴 일만 해도 그랬다. 마침 1965년 한일 수교가 이루어지자 이천 도자기를 찾는 일본인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신상호는 대단한 경제적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그는 이천을 떠났다. 고작 일본인들에게 분청사기를 팔기 위해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1976년 경기도 양주의 허허벌판에 홀로 공방을 새로 짓고, 단순히 전통 도자를 재현하는 게 아닌 자신의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내달렸다.

양주에서 그는 일본 나고야(名古屋)로 가서 가스 가마를 한국 최초로 들여와 실험하는 일을 시작했다. 전통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우면 성공률이 10%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가스 가마를 사 와서 1년간은 탈황 장치 문제로 가마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자살할 생각까지 했다고. 겨우 그 문제를 해결하자 성공률이 폭발했다. 마침 1980년대가 되자 ‘뿌리 깊은 나무’ 한창기 사장과 최순우가 백자 반상기 세트를 대량 생산해 보급하는 일을 추진했다. 플라스틱 그릇이 점령해 가던 시기 우리 문화를 되찾자는 운동의 일환이었다. 이 반상기가 없으면 시집을 못 보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업은 한때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경제적 성공이 찾아오자 신상호는 다시 “도망치듯” 다른 길을 향해 떠났다.

새로운 도전을 찾아 그가 날아간 곳은 중국 시안(西安)이었다. 1989년, 중국과 국교가 수립되기도 전이었는데, 그는 소주 회사 진로 사장을 설득해 그의 후원으로 진시황릉 답사단을 꾸렸다. 황릉의 병용과 병마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신상호는 흙을 불에 구워 그토록 큰 조각이 터지지 않고 만들어지는 기적이 오히려 고대인에게 가능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이제 흙으로 그릇이 아니라 조각을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그의 도조는 아프리카 미술의 영향도 컸다. 1995년 영국 런던에서 아프리카 전시를 본 일은 그의 일생일대 전환점이었다. 그 전시는 스스로 표현한 대로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매일 전시를 봤다는 그는, 이후 30번 넘게 아프리카 대륙을 훑고 다녔다. 아프리카인에게 어떤 형상을 만드는 일은, 감히 인간이 가늠하지 못하는 영적 존재에 대한 경외의 표현이다. 그런 존재를 형상화하기 위해 그는 무섭도록 완벽한 정면성을 지닌 동물 두상 도조를 열정적으로 만들었다. 신상호 하면 떠오르는 동물상의 전형이 이때 완성됐다.

웬만한 고급 호텔 로비에 가면 서 있던 그 무서운 동물상을 계속 만들면 경제적 성공이 보장될 무렵, 그는 다시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도자 타일을 개발해 건축 외벽을 채울 궁리를 했다. 160m나 되는 그의 도자 타일은 기네스북에 올랐고, 김해 클레이아크미술관 외벽을 뒤덮었다. 이제 그는 흙을 회화처럼 평면에 붙여 구워낸 ‘도자 회화’에 몰두하고 있다.

어찌 보면 신상호는 평생 성공보다는 오히려 실패를 좇은 사람이다. 성공의 순간에 그는 매번 다음의 실패를 향해 도전했다. 실패가 깨달음을 주니까. 그러나 경제적 성공에 취해 안주하려는 순간을 벗어나려고 그는 얼마나 의식적으로 노력했을까? ‘나는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또 내놓을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고 그는 썼다. 그래서 그는 도자기를 파는 사람이 아니라 한 명의 예술가로 남았다.

출처: 문화일보(202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