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본 적도 없고 씻나락이란 말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는 들을 수 있다. 누군가 이치에 닿지 않게 엉뚱하고 쓸데없이 하는 말을 이렇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씻나락’은 볍씨를 가리키니 농사를 짓는 이에게는 익숙한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농사를 짓는 사람도 많지 않고 이들마저도 이 말 대신 ‘볍씨’를 더 많이 쓴다.

사라져 가는 씻나락은 다소 엉뚱한 장면에서 다시 등장한다. 사이시옷 규정에 불만이 있는 이들은 왜 ‘씨나락’이 아닌 ‘씻나락’이냐고 불만을 표한다. 뒤이어 과거엔 ‘솟수’였는데 왜 ‘소수’로 바꿨는지, 왜 ‘등굣길’이라고 쓰게 해 ‘굣’이라는 해괴망측한 글자가 눈에 띄게 하는지 분노를 표출한다. 이들은 갈팡질팡하는 듯한 사이시옷 규칙이 불만이고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듯한 어문규범 전체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내막이나 여력을 잘 알지 못하고 하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소수’나 ‘등굣길’은 원칙에 따르자면 지극히 자연스러운데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 비난을 하니 그렇다. ‘소수(素數)’는 한자어이니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 것이 맞고 ‘등교하는 길’은 ‘등교낄’과 같이 된소리로 발음되니 ‘등굣길’이 맞다. ‘장맛비, 감잣국, 고갯짓’ 등도 모두 된소리로 발음하니 이리 표기한다.

이들의 불만을 들어보면 결국 확실한 논리는 없이 예전에는 이렇게 썼다든가 내게는 이것이 익숙하다는 것이 이유다. 말은 모두의 것이고 규정은 모두가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제정한다. ‘씬나락’이라고 발음하는 이가 더 많으니 ‘씻나락’을 바른 표기로 본다. 나는 ‘씨나락’이나 ‘장마비’로 발음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리되어야 한다고 우기면 안 된다. 과거에 ‘솟수’라고 잘못 썼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소수’가 지극히 자연스러우니 ‘라떼’를 기준으로 마구 우겨서도 안 된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출처: 문화일보(202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