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국제 뉴스가 됐다. 최근 영국의 BBC는 ‘한국의 수능 영어는 악명이 높다’며 고대 문자 해독에 비유했다. 텔레그래프는 ‘당신은 이 미친 영어 시험을 통과할 수 있겠는가’라는 도발적 제목으로 실제 문항을 공개했고, 뉴욕타임스 역시 독자에게 네 문제를 내놓으며 이 문제를 맞힐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영어 난이도 실패 책임을 지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임했지만, 문제는 영어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수능 직후 포스텍 교수가 올해 국어 영역 최고 난도 문항으로 꼽힌 17번 이마누엘 칸트 관련 문제를 두고 “정답이 없어 보인다”며 난색을 표했다. 중등 국어 교원 자격을 가진 구효서 작가 역시 국어 문제 몇 개를 푼 뒤 정답을 자신할 수 없다며, 평생 글을 읽고 써 온 사람으로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은 과학탐구 화학Ⅱ 문제 다섯 개 중 두 개를 풀고는 이렇게 반문했다. “챗GPT가 순식간에 답을 찾아주는 문제가 왜 여전히 인재 선발의 척도가 되고 있느냐.” 실제로 최근 서강대 연구팀이 구글 제미나이 등 AI에 수능 수학을 포함해 50문항을 풀게 했더니 최고 92점까지 맞았다고 한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AI 대부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는 “인간은 ‘정답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윤리적·사회적 함의를 사유하는 존재’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세계는 ‘정답 맞히기’에서 탈출 중이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인기 있는 학제 간 프로그램 d.school도 ‘디자인 싱킹’을 내세워 ‘문제 해결’보다 ‘문제 발견’ 능력을 가르치는 것에 더 비중을 둔다. AI가 아이디어와 초안을 무한히 만드는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은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가’ ‘그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재구성할 것인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정답 없는 세계의 한가운데에 있다. AI 위험과 규제, 기술 윤리 같은 당면 문제에 대해 주어진 정답은 없다. 변별력을 위한다며 1∼2분 안에 정답을 고르는 시험엔 아이러니하게 ‘진짜 변별력’이 없다. 월드 뉴스가 된 수능 오명은 우리 교육의 한계를 드러낸다. 정부의 통제로 대학을 획일적으로 관리하는 시대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정답 없는 시대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한 정답이다.

출처: 문화일보(202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