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팀 알퍼 칼럼니스트

1999년 완공된 후 런던의 명물로 자리잡은 초대형 회전 관람차 런던 아이(London Eye).

한국에 거주하는 동안 나는 영국에서 실내화를 신고 살던 기억을 완전히 잊었다. 바닥 난방이 되는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은 대개 실내화를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한국 가정집에서 영국인이 신는 인조 털로 만든 폭신한 슬리퍼를 신었다가는 발에 땀이 날 것이다.

영국인 대부분은 실내화가 방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오해다. 실내화는 영국인이 신기 이전부터 아시아에서 이미 큰 인기를 누렸는데, 주로 베트남과 중국의 귀족들이 치장이나 의식을 위해 실내화를 신었다.

산업혁명 이전에 차가운 돌바닥을 견뎌내려 영국인이 고안한 방법은 밖에서 신던 신발을 집 안에서 그대로 신는 것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은 모든 것을 바꾸며 작은 브리튼 섬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줬다. 돌바닥이 깔린 누추한 헛간 같던 집 대신 영국에는 값비싼 수입 러그와 은은한 광택을 낸 오크 바닥을 깐 넓은 저택들이 순식간에 들어섰다. 이런 호화로운 바닥 위로 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신고 걸어 다니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유한 영국 상인들은 아시아와 무역을 하다가 본 실내화에서 영감을 받아 본격적으로 실내화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온갖 진귀한 재료로 만든 실내화가 부를 과시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자리 잡으며 실내화 산업이 호황을 누렸다.

그 시대의 부는 2025년 영국에선 모조리 증발했다. 현대 영국인은 매우 다른 일상적인 이유, 바로 방한을 목적으로 실내화에 눈을 돌렸다. 비록 통기성은 기대할 수 없으나 합성 피혁, 인조 털, 아크릴 섬유의 발달은 저렴한 비용으로 실내화가 대량 생산되는 것을 돕고 있다.

바닥 난방이 되는 집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문처럼 들리겠지만 이번 겨울 영국 난방비는 또 급상승 중이다. 영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두툼한 슬리퍼는 발가락을 동상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도구다.

영국에서 팔리는 실내화들. /팀 알퍼 제공

출처: 조선일보(2025.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