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김동식 소설가

조문객에게도 급이 있다면  밥 먹을 자격은 누구에게?

일러스트=한상엽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한 분 계신데 부친상을 치르게 되셨습니다. 그 사장님이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맞이하고 계셨는데, 누군지 짐작이 안 가는 사람이 한 명 와서는 다짜고짜 절을 올리더랍니다. 일단 절을 말릴 일은 아니니 좀 이따 묻자 싶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 행색이 찜찜했답니다. 어디서 주워 입은 것 같은 야구 점퍼에 감색 누빔 바지도 해져 있었고요. 냄새도 좀 나는 것 같아 설마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절을 마친 그 사람이 그러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가 아는 분은 아니지만, 부조를 1000원 했습니다. 그게 제가 가진 돈 전부인데, 밥 한 끼만 먹고 가도 되겠습니까?”

아마 노숙자가 밥 한 끼 해결하러 온 것이겠지요. 제가 그 사장님이었다면 무척 황당했을 것 같은데, 사장님은 그래도 이런 날에는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답니다. 게다가 예의 바르게 절도 올리고, 1000원이나마 부조도 했으니까요. “그럼요. 한 끼 드시고 가세요.” 그때 사장님의 아들이 노숙자를 막아섰답니다. “무슨! 그냥 가주세요.” 사장님은 됐다면서 그냥 주라고 말했지만, 아드님이 단호하게 반대했답니다. “남의 장례식장에서 이런 짓은 개념이 없는 거죠. 절대 주면 안 됩니다. 아버지.” “그냥 주고 보내라. 저기 구석에 가서 빨리 먹고 가라고 해.” “안 됩니다. 또 오면요? 다른 노숙자들한테도 소문 나서 죄다 몰려올 겁니다. 여기 오면 1000원에 밥 먹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손님들 모시는데 노숙자들이 단체로 밥 달라고 시위하는 거 보고 싶으세요?”

아들의 말이 나름대로 일리는 있었지만, 그냥 밥을 먹여 보내라고 했답니다. 예의 바르게 절 올린 모습도 봤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아들이 끝까지 반대하더니 남자를 강제로 밀어내 밖으로 쫓아버렸답니다. 사장님은 화를 내려다가, 이미 저지른 일이고, 장례식장이고 하니 그냥 참았답니다. 근데 잠시 후, 화를 못 참게 된 일이 일어났습니다. 화장실을 가려고 잠깐 밖으로 나갔는데, 식객 중에 누가 봐도 조문객 복장이 아닌 사람이 한 명 있었던 겁니다. 대기업 브랜드 로고가 박힌 작업 조끼 같은 걸 입고 있는 사람 말이죠. 아들에게 “저 사람 누구냐” 물었더니, 장례식장 정수기 수리하러 온 사람인데 밥때를 놓쳤다길래 한 끼 대접했답니다.

“아니 저 양반은 뭔데 왜 밥을 줘? 아깐 외부인 밥 주기가 안 된다면서?” “아…. 여기 직원이 부탁 좀 하길래 사정 좀 봐줬습니다.” 사장님은 폭발했죠. “뭐 인마? 너 기준이 왜 네 마음대로야. 사람 가려가며 누군 밥 주고 누군 밥 안 줘?” “아버지, 저 사람은 노숙자가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그게 뭐?” “멀쩡하게 직업 있는 사람이랑 노숙자는 다르죠. 저 사람은 밥 한 끼 먹는다고 노숙자들 끌고 올 일도 없는데요.” “이놈이!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사람 급을 나눠? 덕을 쌓아도 모자랄 판국에! 인마, 그래서 저 양반은 부조라도 했느냐? 하물며 절은? 절하는 것도 못 봤는데? 근데 부조도 하고 절도 한 그 양반은 안 되고, 저 양반은 돼?”

사장님이 하도 길길이 날뛰니 아들이 하는 꼴이 뭐였는가 하니, 정수기 수리 기사에게 가서 돈 1만원이라도 부조를 해주십사 부탁했나 봅니다. 그런데 수리 기사가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낸 거죠. 돈 내고 먹을 거면 나가서 사 먹지, 자기가 뭣하러 여기서 먹겠느냐고요. 그냥 먹으라고 해서 먹은 것뿐이라고요. 기분 나쁘다며 먹던 것도 두고 그냥 나가 버렸답니다. 이 상황이 되니까 아들은 할 말이 없어진 거죠. 사장님은 아주 혼쭐을 냈답니다. “너 당장 나가서 아까 쫓아낸 그 양반 찾아와라.” “예? 아니 1시간도 넘었는데 어떻게….” “찾아오라고 당장!”

사실 사장님은 걱정이 됐던 겁니다. 저렇게 칼같이 냉정한 게 무조건 현명한 거라고 믿는 아들이 과연 회사를 물려받아 잘 운영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그래서 잠깐이나마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라는 의미로 언성을 높였던 거죠. 그런데, 밖에 나간 아들이 5분도 안 돼 그 남자와 함께 돌아온 겁니다. 노숙자가 장례식장 바로 앞 주차장에 앉아 있었다면서요. 1시간 넘게 거기서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사장님은 울컥하더랍니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극진히 그 노숙자를 모셨답니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시장하시죠? 어서 식사하시지요. 술도 필요하시면 마음껏 가져다 드셔도 됩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아들이 걱정했던 대로 그 노숙자가 밥 얻어먹으러 또 찾아오거나, 다른 노숙자들에게 소문이 나는 일 같은 건 없었습니다. 아들도 반성을 했다고 합니다. 그날 자기가 뭔가에 씐 것 같았다고, 할아버지 보내드리는 날 밥 한 끼 공덕을 쌓는 게 옳았다고 말입니다.

이후 사장님이 찾아간 유명한 무속인이 그러더랍니다. 그 노숙자가 바로 돌아가신 아버님이 다른 모습으로 방문한 거라고요. 만약 그날 제대로 대접해 드리지 못했다면 평생 후회할 일이 생겼을 거라고, 그 덕에 사업은 승승장구할 거라고 말입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날 이후 사장님네 회사는 점점 더 잘되고 있긴 합니다. 누가 맞는 걸까요?

출처: 조선일보(2025.11.24)

김동식 소설가

조문객에게도 급이 있다면

밥 먹을 자격은 누구에게?

일러스트=한상엽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한 분 계신데 부친상을 치르게 되셨습니다. 그 사장님이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맞이하고 계셨는데, 누군지 짐작이 안 가는 사람이 한 명 와서는 다짜고짜 절을 올리더랍니다. 일단 절을 말릴 일은 아니니 좀 이따 묻자 싶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 행색이 찜찜했답니다. 어디서 주워 입은 것 같은 야구 점퍼에 감색 누빔 바지도 해져 있었고요. 냄새도 좀 나는 것 같아 설마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절을 마친 그 사람이 그러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가 아는 분은 아니지만, 부조를 1000원 했습니다. 그게 제가 가진 돈 전부인데, 밥 한 끼만 먹고 가도 되겠습니까?”

아마 노숙자가 밥 한 끼 해결하러 온 것이겠지요. 제가 그 사장님이었다면 무척 황당했을 것 같은데, 사장님은 그래도 이런 날에는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답니다. 게다가 예의 바르게 절도 올리고, 1000원이나마 부조도 했으니까요. “그럼요. 한 끼 드시고 가세요.” 그때 사장님의 아들이 노숙자를 막아섰답니다. “무슨! 그냥 가주세요.” 사장님은 됐다면서 그냥 주라고 말했지만, 아드님이 단호하게 반대했답니다. “남의 장례식장에서 이런 짓은 개념이 없는 거죠. 절대 주면 안 됩니다. 아버지.” “그냥 주고 보내라. 저기 구석에 가서 빨리 먹고 가라고 해.” “안 됩니다. 또 오면요? 다른 노숙자들한테도 소문 나서 죄다 몰려올 겁니다. 여기 오면 1000원에 밥 먹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손님들 모시는데 노숙자들이 단체로 밥 달라고 시위하는 거 보고 싶으세요?”

아들의 말이 나름대로 일리는 있었지만, 그냥 밥을 먹여 보내라고 했답니다. 예의 바르게 절 올린 모습도 봤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아들이 끝까지 반대하더니 남자를 강제로 밀어내 밖으로 쫓아버렸답니다. 사장님은 화를 내려다가, 이미 저지른 일이고, 장례식장이고 하니 그냥 참았답니다. 근데 잠시 후, 화를 못 참게 된 일이 일어났습니다. 화장실을 가려고 잠깐 밖으로 나갔는데, 식객 중에 누가 봐도 조문객 복장이 아닌 사람이 한 명 있었던 겁니다. 대기업 브랜드 로고가 박힌 작업 조끼 같은 걸 입고 있는 사람 말이죠. 아들에게 “저 사람 누구냐” 물었더니, 장례식장 정수기 수리하러 온 사람인데 밥때를 놓쳤다길래 한 끼 대접했답니다.

“아니 저 양반은 뭔데 왜 밥을 줘? 아깐 외부인 밥 주기가 안 된다면서?” “아…. 여기 직원이 부탁 좀 하길래 사정 좀 봐줬습니다.” 사장님은 폭발했죠. “뭐 인마? 너 기준이 왜 네 마음대로야. 사람 가려가며 누군 밥 주고 누군 밥 안 줘?” “아버지, 저 사람은 노숙자가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그게 뭐?” “멀쩡하게 직업 있는 사람이랑 노숙자는 다르죠. 저 사람은 밥 한 끼 먹는다고 노숙자들 끌고 올 일도 없는데요.” “이놈이!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사람 급을 나눠? 덕을 쌓아도 모자랄 판국에! 인마, 그래서 저 양반은 부조라도 했느냐? 하물며 절은? 절하는 것도 못 봤는데? 근데 부조도 하고 절도 한 그 양반은 안 되고, 저 양반은 돼?”

사장님이 하도 길길이 날뛰니 아들이 하는 꼴이 뭐였는가 하니, 정수기 수리 기사에게 가서 돈 1만원이라도 부조를 해주십사 부탁했나 봅니다. 그런데 수리 기사가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낸 거죠. 돈 내고 먹을 거면 나가서 사 먹지, 자기가 뭣하러 여기서 먹겠느냐고요. 그냥 먹으라고 해서 먹은 것뿐이라고요. 기분 나쁘다며 먹던 것도 두고 그냥 나가 버렸답니다. 이 상황이 되니까 아들은 할 말이 없어진 거죠. 사장님은 아주 혼쭐을 냈답니다. “너 당장 나가서 아까 쫓아낸 그 양반 찾아와라.” “예? 아니 1시간도 넘었는데 어떻게….” “찾아오라고 당장!”

사실 사장님은 걱정이 됐던 겁니다. 저렇게 칼같이 냉정한 게 무조건 현명한 거라고 믿는 아들이 과연 회사를 물려받아 잘 운영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그래서 잠깐이나마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라는 의미로 언성을 높였던 거죠. 그런데, 밖에 나간 아들이 5분도 안 돼 그 남자와 함께 돌아온 겁니다. 노숙자가 장례식장 바로 앞 주차장에 앉아 있었다면서요. 1시간 넘게 거기서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사장님은 울컥하더랍니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극진히 그 노숙자를 모셨답니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시장하시죠? 어서 식사하시지요. 술도 필요하시면 마음껏 가져다 드셔도 됩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아들이 걱정했던 대로 그 노숙자가 밥 얻어먹으러 또 찾아오거나, 다른 노숙자들에게 소문이 나는 일 같은 건 없었습니다. 아들도 반성을 했다고 합니다. 그날 자기가 뭔가에 씐 것 같았다고, 할아버지 보내드리는 날 밥 한 끼 공덕을 쌓는 게 옳았다고 말입니다.

이후 사장님이 찾아간 유명한 무속인이 그러더랍니다. 그 노숙자가 바로 돌아가신 아버님이 다른 모습으로 방문한 거라고요. 만약 그날 제대로 대접해 드리지 못했다면 평생 후회할 일이 생겼을 거라고, 그 덕에 사업은 승승장구할 거라고 말입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날 이후 사장님네 회사는 점점 더 잘되고 있긴 합니다. 누가 맞는 걸까요?

출처: 조선일보(2025.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