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규 기자

경제학자들에 반성 요구한 이현재 전 국무총리

경쟁 치열한 경영환경 외면하고 연구 부실한 학계 '정조준'

"기업 이해 부족한 학자일수록 '사회적 책임'만 요구…반성해야"

유한양행 제공

“기업과 기업가가 생존과 발전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지를 외면한 채, 그들에게 정의하기조차 어려운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다그친다. 기업에 대해 잘 모르는 경제학자일수록 그렇다.”

14일 한국경제학회에 따르면 이현재 전 국무총리(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학회가 최근 발간한 학술지 ‘한국경제포럼’에 게재한 ‘한국의 경제학과 경제학자: 반성과 제언’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이 같은 일침을 날렸다. 만 95세인 노령의 경제학자가 한국 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조목조목 늘어놓으며 ‘기업에 대한 몰이해’를 직접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그는 한국 경제학의 문제점으로 “경제의 생산 주체인 기업 부문에 관한 연구가 부실하다”고 했다. 기업 안에서 벌어지는 일,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 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경제학자가 적다는 뜻이다. 이렇게 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인데도 경제학자가 기업을 비난하고 있다는 점을 더 큰 문제로 지목했다. 이 전 총리는 “많은 경제학자가 기업과 기업가를 구분하지 않고 몇몇 기업가의 일탈 행위를 근거로 기업을 비난한다”고 지적했다.

1989년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는 이현재 전 국무총리. 한경DB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점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 전 총리는 “기업과 기업가가 번 돈은 누구나 가져다 써도 되는 양 무슨 일만 생기면 ‘사회’를 위해 내놓으라고 한다”며 “기업을 잘 모르는 경제학자일수록 그렇다”고 썼다. 그는 “기업과 기업가를 비판하려면 먼저 객관적이며 깊이 있는 연구를 선행해야 한다”고 일침을 날렸다.

이 전 총리는 1929년 충남 홍성 출신으로 만 95세의 경제학자다. 1961년부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일했고 1983년 서울대 총장, 1989년 노태우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서울대 총장 시절인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에 연루된 서울대생을 제적하라는 전두환 정권의 압력에 맞서 “법원 판결이 나오면 처리하겠다”고 버티다가 경질된 일화로 유명하다.

이 전 총리는 경제학자의 현실 참여 방식도 비판했다. 그는 “학문 세계에 몸담은 자로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경제학자의 당연한 책무”라면서도 “경제학자가 주관적 판단에 좌우됨 없이 엄밀한 학문적 근거에 바탕을 두는 태도를 견지하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따른다”고 했다. 정치인과 법조인, 언론인 등과 관련해선 “경제 논리를 무시한 정치 행위와 법률 행위가 얼마나 커다란 해악을 낳는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대학의 박사 학위 과정이 부실하다며 경제학 연구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이 전 총리는 “석사를 배출하는 데에는 경제학 선진국 대학에 뒤지지 않으나 박사를 배출하는 능력은 부족하다”며 “소위 일류 대학에서조차 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도록 학생들을 인도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한국 경제학자에 대한 당부의 말도 남겼다. 이 전 총리는 한국인 경제학자가 천착해야 하는 분야로 남북한 통일 연구, 저개발 국가의 성장 연구, 인구에 관한 연구 등을 꼽았다. 한국만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분야기 때문에 한국인 경제학자가 이 분야를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 사이의 조화와 공존을 모색하는 일, 전쟁을 억제하는 일, 인간과 신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일 등은 인류의 다섯 가지 ‘대과제’로 제시했다. 이 전 총리는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한국의 학자가 실마리를 찾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출처: 한국경제(2025.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