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무궁화 묘목 심기. /이주연 제공

무궁화 묘목을 산골짜기 내 몇몇 집에 보냈다. 4km의 긴 골짜기에 무궁화가 한 그루도 없어 묘목을 제공해 아름다운 꽃길을 만들 셈이었다. 그런데 “무궁화는 진딧물이 많이 끼어서 싫어요” “병충해가 많아서 지저분해요”라는 반응이었다. 거절당했다.

과연 무궁화는 병충해가 많고 지저분한 꽃인가? 언제부터 그런 소문이 퍼진 것일까. 나는 2년 전에 무궁화 묘목 1년생 100그루와 4년생 3그루를 사서 심었다. 과연 무궁화가 해발 700m 고지대에서 영하 25도의 겨울을 견딜 수 있을지, 그리고 병충해가 얼마나 심한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동체 마당에 심은 무궁화는 올해 아름답게 꽃이 피기 시작해 지금은 하루도 쉬지 않고 피어난다. 지난겨울 혹한도 견뎌냈다. 꽃 색깔이 얼마나 맑은지 모른다. 지난여름 그 습하고 무더운 날에도 진딧물이나 다른 해충이 없었다. 방제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양지바르고 바람 잘 통하는 앞마당에 심었기 때문이다. 무궁화는 양수(陽樹)라서 햇빛을 좋아한다. 하루 6시간 이상 직사광선이 드는 곳에 심으면 꽃이 많이 피고 튼튼하다. 뒷마당, 음습한 곳, 그늘진 개울가, 마을이나 마당의 구석진 곳에 심으면 안 된다. 생육이 약화되고 ‘무궁화혹진딧물’ 군집이 번식한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무궁화는 수액이 많고 아주 부드러운 식물이다. 그래서 곤충들조차 좋아한다. 진딧물도 좋아서 모여드는 것이다. 무궁화는 하루 꽃이다. 쉼 없이 매일 피어나고 진다. 하루하루 무궁(無窮)하게 피어나서 무궁화라 한다. 우리나라는 고려 때도 애국가 가사처럼 ‘무궁화 화려강산’이었다. 근대에는 애국 계몽 운동으로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무궁화를 심었다. 앞장선 인물이 남궁억 선생이다. 그는 교회를 통해 목숨 걸고 방방곡곡에 무궁화를 심었다. 나라 사랑·겨레 사랑·하나님 사랑의 상징으로 심었다. 믿음으로 독립 정신을 기리자는 것이었다.

산마루공동체는 해방 80주년을 맞아 무궁화 동산을 만들었다. 우선 4년생 80그루를 심었다. 7년간 6000그루를 심으려 한다. 뜻을 함께하는 이가 와서 기념 식수를 하고 있다. 무궁화 동산엔 7m 게양대에 십자가 깃발과 태극기도 기상 있게 올렸다. 무궁화로 정신 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1차는 회개 운동이다. 그리고 화해와 사랑, 무궁한 평화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왜 회개 운동인가? 과연 우리에게 민족적 회개 운동이 있었던가! 회개는 분노와 청산보다 더 깊고 숭고하다. 나라를 빼앗긴 지도자들도, 분단의 당사자들도 회개가 없었다. 1000만명이 희생된 전쟁을 치르고서도 민족적 회개가 없었다. 또한 불행히도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었으나, 국가 청렴도는 60점 전후 낙제 국가다. 회개가 길이다.

과거 가난과 부정직과 도박의 나라였던 덴마크와 스위스가 구룬트비와 칼뱅의 회개 운동으로 오늘날같이 청렴도 95점 전후의 안정된 선진국이 되었다. 예수께서 시작한 하나님 나라 운동의 선포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였다. 천국은 무궁한 평화(샬롬)가 실현된 곳이다. 무엇으로 가능한가? 물질적 풍요로, 역사 청산으로, 한 인간의 의로움으로? 아니다. 한 영혼 영혼이 진정한 회개에 이르러야 한다.

출처: 조선일보(202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