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학자의 ‘실험 고고학’

송혜진 기자(조선일보)

3년 동안 26번 배를 타고 스칸디나비아 서해안을 헤맸다. 가장 두려운 건 돌풍이었다. 항해 도중 휘몰아치는 강풍에 돛대 기둥이 부러져 두 동강이 난 적도 있었다. 칠흑 같은 한밤 내내 돛대 기둥을 도끼로 이어 세우기 위해 씨름해야 했다. 그래도 다시 새로운 배를 구해 떠났다. 서기 800~1050년 노르웨이 해안에서 해상 무역을 한 바이킹들의 길을 따라 밟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웨덴 룬드대학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리어 재럿 얘기다. 고고학자인 그는 배를 타고 바이킹들이 오갔던 스칸디나비아 서해안을 오가는 일에 도전했다. 유물이나 자료 연구만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과거 인류의 모습을 몸으로 부딪치며 헤아리는 ‘실험 고고학’을 통해 그 시대 바이킹들이 오간 진짜 항로를 알아내고 싶었다. 이른바 ‘바이킹 발자취 따라잡기(Traveling in the wake of the Vikings)’다. 연구 결과는 최근 국제 학술지 ‘고고학적 방법과 이론’에 실렸다.

그래픽=양진경

◇3년간 2800㎞ 항해 실험

흔히들 바이킹은 바다에서 노략질을 하던 약탈자 정도로 기억한다. 재럿은 그러나 각종 기록을 뒤지면서 바이킹이 당대 최고 무역상으로, 교역로가 이라크 바그다드까지 뻗어 있었음을 알았다. “이들의 힘은 바다를 장악하는 데 있었어요. 다만 어떤 기록을 뒤져도 바이킹이 실제 이동한 상세 항로가 자세히 나온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걸 직접 복원해 보고 싶었어요.”

바이킹이 움직였던 길을 가려면 당시 해수면이 지금과 어떻게 달랐는지부터 살펴봐야 했다. 재럿은 디지털 모델링으로 바이킹 시대의 해수면이 지금보다 6m나 높았음을 확인했다. 오늘날 존재하는 항구 일부는 당시엔 바닷속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이 지형 데이터를 바탕으로 당시 배가 드나들기에 충분히 깊은 만(灣)이나 해협이 어디였는지 등을 조사했고, 이를 실제로 항해하면서 대조해 보기로 결심했다.

항해를 하려면 배가 필요했다. 바이킹 전통 조선술(造船術)을 가장 잘 보존한 곳이 노르웨이다. 재럿은 노르웨이 국립직업학교의 목공들에게 바이킹이 탔던 전통 목선 9종류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 이 중에서도 가장 널리 쓰인 배 두 종류 ‘오피오르 보트’와 ‘펨뵈링 보트’를 타고 항해에 나섰다. 모두 얇은 판자를 겹쳐 못으로 고정하는 전통 방식의 기술을 활용해서 만든 배다. 이처럼 옛날 방식의 배는 노와 돛을 모두 사용했다. 온라인으로 자원자를 받아서 함께 항해를 떠날 선원을 구했다. 그렇게 2021년 늦여름, 재럿은 자원자들과 첫 번째 항해를 시작했다. 구불구불하고 좁기로 유명한 스칸디나비아 피오르 해안을 전통 목선을 타고 오가기 시작한 것이다. 3년 동안 26번, 총 2800㎞를 배로 누볐다.

그래픽=양진경

◇바이킹이 다녔던 ‘숨은 바닷길’을 찾다

재럿은 덴마크의 리베, 아일랜드의 더블린, 노르웨이의 베르겐과 리사, 로포텐 등을 잇는 항해길을 번갈아 다니면서 바이킹이 배를 잠시 쉬어갔을 장소를 찾았다. 노르웨이 서부의 스뫼르함, 쇠뢰야네, 포스나보그, 스토르포스나 섬 같은 곳이다. 재럿은 “파도를 피할 만한 작은 만이 있는 곳을 바이킹들이 찾았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런 장소는 지금은 해수면이 내려가고 땅이 솟아 얕은 늪지나 모래톱으로 변해 버렸지만, 당시로선 훌륭한 항구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고 했다. “전통 목선으로만 다니던 바이킹으로선 비바람이 거센 바닷길 곳곳에서 쉬어 갈 기착지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덴마크 로스킬레 바이킹 선박 박물관의 함선 복원가 비베케 비쇼프는 “그동안 바이킹 무역선은 연안의 큰 항로에만 머물렀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재럿의 연구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재럿은 그 시대 바이킹처럼 3년을 바다에서 노를 젓고 바람과 싸우며 길을 찾아냈다. 그는 “기록을 찾고 읽는 데 머물지 않고 실증을 통해 진정한 고고학이 완성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출처: 조선일보(2025.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