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실세 총리’라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취임 첫날부터 서울-세종 길을 오가는 수고를 해야 했다. 7일 오전 일찍 세종에서 국립박물관 건축 현장을 찾았다. 이어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식을 했다. 그러곤 서울로 향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오찬을 같이했다. 국정기획위원회도 들렀는데, 다시 세종으로 내려갔다. 삼청동 총리공관이 아닌 세종 총리공관에서 의사·의대생 대표들과 만찬을 했다.

세종청사엔 ‘길 위의 길 국장, 길 과장’이 아직도 많다. 정부 부처·기관들이 세종으로 이전한 후 서울 출장이 잦고 가족이 서울에 거주하는 사례가 많아, 길 위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다반사여서다. 서울에서 업무가 많은 장·차관을 따라나선 와중에도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도 해야 한다. 지역 균형발전과 수도권 인구 분산을 명분으로 만들어진 세종특별시가 올해로 13년이 됐지만, 길 과장의 고민은 여전하다.

김 총리도 당분간 비슷한 처지다. 이재명 대통령이 “총리가 세종을 잘 챙겨 달라”고 당부했단다. 이에 따라 취임 날부터 일주일 동안 세종에 머물며 일을 하기로 했다.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차원이란 해석이 붙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대전 타운홀 미팅에서 ‘대통령실이 언제 세종에 오느냐’는 질문에 “제2 집무실을 지으면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일부는 세종에서 근무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최대한 빨리 와보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터다. 김 총리는 9일 국회의사당과 대통령집무실 세종 부지를 방문할 예정이다.

바삐 움직이는 총리를 탓할 일은 없다. “국민의 새벽을 지키는 총리”가 되겠다고 했으니 기대를 걸 만도 하다. 하지만 김 총리의 방점은 “위대한 대통령 시대를 여는 참모장”에 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총참모장’이란다. “과거 대통령과 총리가 나눠서 국정 운영을 했던 사례가 있는데 결과적으로 원활하지 않았다”고 했다. 참모는 돕는 사람 정도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권력구조 개편 여론이 들끓었다. 최소한 책임총리제라도 하라는 주문이 많았다. 그런데 ‘대독 총리’보다 더한 ‘참모 총리’다. 대통령과 만나는 주례 회동도 ‘주례보고’ 회동으로 부르기로 했다. 여기저기 ‘심부름’하느라 길 위에만 있는 총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출처: 문화일보(2025-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