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엇갈리는 평가에도 세계적 화제를 모은 ‘오징어 게임’ 시즌 3는 주인공 성기훈이 갓난아기를 살리고 희생하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황동혁 감독은 원래 성기훈이 게임을 파괴하고 딸을 만나러 가는 해피엔딩을 구상했으나, 미래 세대를 위한 희생이 더 진정성 있다고 생각해 결말을 바꿨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이 해피엔딩을 허락하지 않은 덕분에 한심하고 나약한 성기훈은 성장을 거듭해 희생을 감내하는 영웅이 됐다. ‘오겜’ 시즌 3도 93개국 1위를 휩쓸고 있으니 그는 우리 시대 대중적 영웅의 상징이 됐다고 할 만하다.

신이나 초월적 영웅에서 벗어나 현실을 살아가는 보통의 인간 영웅 서사는 근대 소설과 함께 본격 시작됐다.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 시민사회 성장, 중산층 부상 등의 결과다. 보통 영웅 시대의 문을 연 주인공은 로빈슨 크루소였다. 대니얼 디포의 동명 소설(1719) 주인공인 그는 무인도에서 홀로 두려움과 절망을 이겨내며 일어선다.

시간을 건너뛰어 21세기의 대표적인 영웅이라면 마블 유니버스의 인간적 히어로들이다.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지만 집세, 성적, 연애 고민에 시달리는 평범한 이웃 청년이고, 아이언맨은 방탕하고 자기중심적인 약점에도 두려움과 불안을 딛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낸다. 최근 한국 대중문화도 평범한 영웅의 전성시대다. 다만, 우리 히어로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약자들의 각자도생 논리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을 위해 복수 대행에 나서는 드라마 ‘모범택시’가 대표적이다.

성기훈은 로빈슨 크루소부터 마블 영웅과 각자도생 이웃의 면모를 조금씩 갖고 있다. 밑바닥 인생인 그는 좌절과 분노에도 자기 안의 연민과 양심을 불러내 결국, 히어로가 된다. “우리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인간은…”이라는 마지막 대사는, 이 영웅적 선택은 다름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말로 들린다. 기성세대가 욕망을 내려놓고 미래 세대를 위해 행동해야 하기에 결말을 바꿨다는 황 감독은, 왜 미완성 대사로 끝냈느냐는 질문에 각자 빈칸을 채우라는 뜻이라고 했다. “인간은 비정하고 탐욕스럽지만, 때론 인간애 넘치는 존재”라며 각자 그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우리 기성세대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출처: 문화일보(202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