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하버드대 풀브라이트 방문학자(유네스코한국위원회)

지금 보스턴은 한국으로 뜨겁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보스턴미술관에서 ‘한류’ 특별전이 24일 대대적으로 개막했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 세트장부터 걸그룹 에스파의 무대의상까지 한국 대중문화의 면모를 보여주는 전시와 함께 티모시 현수 리, 줄리아 권 같은 재미 교포 예술가들의 작품까지 250점의 다양한 컬렉션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 22일 열린 사전 오프닝 파티에는 4000여 명이 몰려 박물관 메인 홀을 가득 채우고 K팝을 ‘떼창(唱)’했다.

전시장에는 10대 청소년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니어들이 많이 보이는 편이었다. 이는 보스턴과 한국의 오랜 인연이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보스턴미술관은 20세기 초부터 한국 유물을 적극 수집했고, 별도의 한국실이 있는 몇 안 되는 해외 박물관 중 하나다. 19세기부터 무역의 중심지였던 탓에 아시아의 많은 유물들이 들어왔고 그중에는 국보급 고려청자와 불화, 금속 공예품들이 여럿 있었다. 이번 한류 전시에는 대중문화와 예술뿐 아니라 한국 문화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미국에서 한국 문화가 친숙하게 받아들여지는 배경에는 현지 한인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이런 열세에도 불구하고 한류 바람이 불기 전부터 한국을 알리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예컨대 보스턴미술관에선 10년 전부터 음력 설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데, 알고보니 전자공학자인 매사추세츠주립대 김병국 교수가 이끄는 보스턴 한미예술협회가 중심이었다. 여기에 최근 만개한 한류가 결합하면서 엄청난 시너지로 이어졌고, 대형 행사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120년 한인 이민의 역사가 한류를 만나 새로운 페이지를 쓰고 있는 곳은 비단 보스턴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미 LA와 뉴욕 등 수많은 도시에서도 젊은 세대의 한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에 더욱 관심을 가지면서 한류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사회가 세대를 초월해 한류를 즐기는 지금, 한국도 좀 더 다양한 세대가 어울려 문화를 즐겨보면 어떨까. 전국노래자랑이든 아이돌 콘서트든,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손잡고 춤추며 즐기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출처: 조선일보(2024.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