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국립세종수목원 전시원실장

사진=박원순・국립세종수목원, 그래픽=이철원

도시의 정원은 공기를 맑게 하고, 다양한 생물의 터전이 되며,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삶의 근간이 되는 여러 혜택을 제공한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기대 효과는 바로 치유다. 스트레스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심화되고 있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정원은 우리가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미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가 인간의 삶에 근원적인 기쁨을 주는 자연 혹은 정원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의 정원에서 행복하고 평온한 삶에 대한 이상을 추구했으며,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땅을 파고 흙을 일구는 것을 잊는다면 우리 자신을 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 자연과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일깨워 주며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인간이 더욱 완전해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6세기 이탈리아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은 영적인 삶이 땅과 연결되어 있다는 성 베네딕트의 믿음에 따라 기도와 심신 수양의 일환으로 정원에서 꽃과 채소, 약초와 과일을 가꾸었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거듭나는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몸소 체험하며 정원을 가꾸는 행위가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여러 유익한 효과를 제공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풍부한 햇빛과 맑은 공기, 다채로운 꽃과 나무가 있는 정원이 환자들의 치유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그간 과학적으로도 많이 입증되었다. 단적인 예로, 1980년대 스웨덴의 환경심리학자 로저 울리히는 창밖 풍경이 환자들의 회복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창문 너머로 나무가 보이는 병실의 환자들이 벽돌담이 보이는 병실의 환자들보다 더 나은 회복력을 보였다. 꽃을 많이 볼수록 혈압과 심박수를 낮추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부지기수다.

스코틀랜드의 예술가이자 정원 디자이너였으며, 세계적인 건축가 찰스 젠크스의 아내였던 매기 케스윅은 암 진단을 받은 후 병원의 진료 환경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데 자신의 남은 생을 바쳤다. 덕분에 오늘날 영국 런던, 홍콩, 도쿄 등지에 설립된 매기 센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와 조경 디자이너들이 만든 혁신적인 치유 정원들이 조성되어 있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 수 스튜어트 스미스가 ‘정원의 쓸모’라는 책에서 소개했듯, 식물과 정원은 우울증, 트라우마, 불안 등 다양한 심리적 문제들을 극복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세로토닌,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하여 우울감을 줄이고 행복감을 높인다. 흙을 파고, 풀을 뽑고, 가지를 치는 행위는 분노와 공격성, 좌절과 불안 등 부정적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수단이 된다. 또한 자신이 일군 정원에 새롭게 돋아나는 식물의 잎과 줄기, 꽃과 열매를 보는 일은 희망과 활력을 불러일으켜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한 만족감과 자존감을 얻을 수 있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정원은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훌륭한 방책이 될 수 있다. 병원과 복지 시설, 요양원뿐 아니라 노인들의 생활 저변에 정원과 치유 프로그램을 확산해야 하는 이유다. 심지어 정원 활동이 치매 환자들의 인지 기능 향상에도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지난해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치매 노인 51명을 대상으로 5개월간 진행한 정원 치유 프로그램은 우울감 감소, 기억력 감퇴 개선, 대뇌 혈류량 증가 등 긍정적 효과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정원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대다수 도시인들의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인도네시아 보고르농과대학(IPB)에서 인도네시아 최대 규모인 보고르 식물원 방문객 100명을 대상으로 한 최신 연구에 따르면 식물원을 방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방문 전에 비해 편안하고 진정된 느낌을 받았고, 97%의 응답자가 정원 방문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응답했다. 방문객들은 주변 환경을 즐기고, 풍경을 탐험하며, 자연의 자극에 관심을 느끼고, 일상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편안함과 안정감을 얻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정원을 소유하고 있거나 녹지를 가까이에 두고 있다고 해서 치유 효과가 있다기보다 이러한 초록 공간을 적극적으로 방문하는 경험 자체가 더욱 큰 치유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누구나 가드닝을 통해 일상 속 행복 지수를 크게 높일 수 있다.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지만 씨앗을 뿌리고 식물을 키우며 정원을 창조하는 일은 어느 정도 마음먹은 대로 이룰 수 있다. 특히 과로와 스트레스로 육체적·정신적으로 번아웃되기 일쑤인 현대인들에게 정원은 자연의 리듬에 맞춘 삶의 속도감, 그리고 자연과 연결되고자 하는 본능적 감각을 지속적으로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치유를 위한 정원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최근 영국 왕립원예협회(RHS) 위즐리 가든과 서리대학교 등 연구진의 공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즐거운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 정원의 주요 특징에는 다양한 식물과 자연의 소리, 입체적인 공간 구성이 포함된다. 무엇보다 단순 녹지보다는 다양한 질감, 색상, 향기를 지닌 식물들이 즐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또한 정원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벤치와 함께, 직선보다는 곡선으로 난 길이 흥미를 촉진하며 걷기와 탐험을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간 수많은 정원을 기획하고 만들어 온 필자가 생각하는 치유 정원은 갖가지 아름다운 식물과 예술적 오브제를 통해 오감을 일깨우고, 어린이와 청소년뿐 아니라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들이 다 함께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감각 정원(Sensory Garden)’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개념은 사람과 자연의 연결이다. 모두가 함께 정원을 가꾸며 몸과 마음에 유익한 아름다운 시공간을 창조해 내는 데서 얻는 행복감이 도시 정원을 통한 치유의 핵심이다.

출처: 조선일보(2024.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