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음악평론가

가수 비비 신곡 '밤양갱' 뮤직비디오. /필굿뮤직 제공

“리듬이 복잡해도 박자는 맞춰야지. 4박자는 인간의 본능이잖아!” 아마추어 밴드에선 박자를 못 맞춰 헤매는 베이시스트에게 드러머들이 자주 이처럼 일갈(一喝)한다.

대중음악에서 4박자는 기본이요, 본능의 박자다. 발라드도, 댄스곡도 대체로 ‘쿵짝쿵짝’ 안에서 논다. 인간이 듣기에 편안한 구조다. 오죽하면 송대관도 우리네 삶이 ‘네 박자’라 노래했겠는가. 어느 음반 제작자는 몇 년 전 이렇게 자신했다. “3박자는 안 돼~. 좋은 노래는 돼도, 대중 히트곡은 만들 수 없다니까. 무조건 4박자야.”

뉴턴의 제1법칙과도 같던 ‘가요계 4박자 법칙’을 깨버린 게 작금의 ‘밤양갱’(가수 비비) 신드롬이다. 장기하 작사·작곡·편곡. 3박자로 만들어져 국내 가요 차트 정상을 차지한 ‘밤양갱’을 처음 들었을 때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를 떠올렸다. ‘쿵짝짝, 쿵짝짝…’으로 흐르는 4분의 3박자 왈츠는 묘한 고양감을 자아낸다. 19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에 춤바람이 나 6000명이 들어가는 무도장이 생길 정도로 광풍을 불러온 박자다. 사람의 다리는 2개라서 4박자엔 똑 떨어진다. 절도 있는 케이팝 칼군무를 보라. 반면 2로 나뉘지 않는 3박자는 듣는 자와 춤 추는 자를 끊임없이 회전하게 만든다.

수학적이며 건축학적인 ‘3의 고양감’도 있다. 2박, 4박을 규칙적으로 때리는 4박자 비트와 달리 3박자 왈츠 비트는 2박과 3박의 ‘짝짝’에 강세가 온다. 강약의 ‘중력장’이 뒤쪽으로 구부러지는 셈. 못갖춘마디, 당김음까지 더해지면 그 맛은 더 별미다. 3박자에 맞춘 찰진 말맛의 가사까지 얹어진 ‘밤양갱’이 오묘한 입체감과 긴장감을 발군으로 뽐내는 이유다.

4박자의 절도와 긴장감이 가득했던 가요 차트 최정상을 능청맞게 ‘절도(竊盜)’해버린 ‘밤양갱’ 같은 노래가 더 나왔으면 좋겠다. 좀 더 욕심을 부려보면, 3박보다 더 아찔한 5박의 ‘Take Five’(데이브 브루벡)나 ‘미션 임파서블’ 메인 테마(랄로 시프린), 7박의 ‘All You Need is Love’(비틀스) 같은 오묘한 히트곡이 이참에 앞다퉈 피어나길 기대해 본다.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화이트 ‘네모의 꿈)’이 되기 쉬운 가요계가 삼각형, 오각형, 칠각형의 다채로운 스카이라인을 갖추는 모습, 상상만 해도 즐겁다.

출처: 조선일보(2024.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