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2010년 12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어는 비’를 맞은 나무가 통째로 얼어붙었어요. /위키피디아

비가 갑자기 얼어붙어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1992년 3월 22일 미국 뉴욕에 있는 라과디아 공항에서 US 에어 405편 여객기가 이륙하다가 앞으로 꼬꾸라지며 공항 앞 플러싱만에 추락했어요. 탑승자 51명 중 기장과 부기장을 포함한 27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였어요.

사고 원인은 '어는 비(freezing rain)'였던 것으로 미 연방항공국(FAA) 조사에서 밝혀졌어요. 당시 공항 기온은 영하권이었고, 이륙 35분 전에 비행기에 붙은 얼음을 없애는 제빙 작업을 진행했어요. 그러나 비행기가 이륙을 기다리던 활주로에는 어는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기체 바깥쪽에 떨어진 빗방울이 고스란히 얼어붙어 무거워진 비행기는 비행 속도가 너무 느려 추락하게 됐어요.

어는 비는 빗방울이 떨어져 차가운 표면에 부딪힐 때 거의 순간적으로 투명한 얼음층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해요. 어는 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구름이 떠 있는 곳은 기온이 영하권이어서 구름에서는 눈이 떨어져요. 눈이 내려오다가 중간에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는 '역전층'을 만난다면 녹아서 빗방울이 되는 거죠. 그런데 비로 내리다가 지표면 근처에서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눈으로 바뀌지 못하고 물방울인 채로 떨어집니다. 이것을 '과냉각 물방울'이라고 해요. 과냉각 물방울은 비의 형태이지만 땅의 물체에 닿는 순간 퍼지면서 매우 맑은 얼음으로 얼어붙습니다. 비는 비인데 얼음으로 변하는 어는 비입니다.

어는 비는 큰 피해를 불러일으켜요.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블랙 아이스'도 어는 비가 원인입니다. 블랙 아이스는 어는 비가 떨어진 도로에 매끈하고 투명한 얼음층이 생겨나는 것을 말해요. 운전자는 투명한 얼음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평소처럼 도로를 달리다가 사고를 내게 되죠.

또 항공기나 헬기 등에 어는 비가 달라붙으면 기체가 무거워져 추락할 위험이 매우 커지고요. 전선에 얼어붙는 경우 전선이 휘거나 끊어지면서 정전 사태를 발생시키죠. 과일나무 가지가 부러지고,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면서 농부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대규모로 발생할 때는 미국에서 수십억달러의 피해를 준 적도 있었지요.

어는 비는 추운 겨울을 비롯해 이른 봄이나 늦가을에도 발생해요. 발생 빈도는 드문 편이지만, 기후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따뜻한 겨울이 잦아지면 어는 비가 더 많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답니다. 기후변화 문제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출처: 조선일보(2024.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