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해외 저자에 대한 열렬한 팬덤은 일정 부분 ‘우리에게 없는 것’ 혹은 ‘없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프랑스 현지보다 더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건, 1993년 출간된 소설 ‘개미’가 당시 우리에게 없던 과학소설, 그것도 지적인 동시에 대중적 장르에 대한 독자의 갈증에 답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열광적 반응을 일으킨 알랭 드 보통은 학자들의 난해한 철학이 아니라 일상과 감정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철학으로 환호받았다. 리베카 솔닛은 2010년대 중반, 남성들이 여성에게 설명하려 드는 현상인 ‘맨스플레인’을 내세워 ‘미투’가 본격화되기 전, 여성들 자신도 몰랐던 불편한 마음을 해소해 주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주 두 권의 책 ‘목표는 천하무적’과 ‘용기론’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일본 작가 우치다 다쓰루(75)도 그렇다. 우치다는 2007년 일도 공부도 하지 않고 스스로 하류라 칭하는 일본 젊은 세대를 분석한 화제작 ‘하류지향’ 이후 국내에 40여 권의 책을 내며 20년 가까이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메운 한국의 빈자리는 다름 아닌 ‘어른’이었다. 그는 여러 책을 통해 권위 있는 리더가 아니라 일상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어른을 거듭 말해 왔다. 그에게 어른이란 ‘자기 발밑의 유리를 줍고’ ‘자기 집 앞의 눈을 쓸고’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 개수대에 쌓인 컵을 씻는 사람’이었다.

이번 방한에서도 그는 한국 독자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 ‘한국에는 없는, 하지만 인식도 못 한 채 결핍을 느끼는 것’으로 ‘무도 정신’을 꼽았다. 합기도 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무도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이 없다. 그저 어제의 나보다 나아갈 뿐”이라고 했다.

무도의 최종 목표인 ‘천하무적’ 역시 경쟁에서 모든 적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천하에 적이 존재하지 않는 온화하고 너른 경지라고 했다. 모두가 적이고 경쟁자인 세상에서 적절히 대처해 오히려 적을 지원자와 협력자로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이루기 어려운 경지로 그는 그저 ‘천하무적’을 이상적 목표로 오늘도 끊임없이 수련해 나갈 뿐이라고 했다. 상대를 넘어뜨려야 내가 사는 극단의 정치 속, 새로 선출될 차기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이상이야말로 진정한 ‘천하무적’일 것이다.

출처: 문화일보(2025-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