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정신과 의사의 서재

긴 연휴가 끝나고 “연휴에 어떻게 쉬었어요?”라고 안부를 묻는다. 긴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힘들고 지친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친다. “다들 놀러만 다니나 봐요. 어디를 가도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그의 얼굴 뒤로 뿌듯함이 읽힌다.

언제부터 쉬는 것도 제대로 놀아야 한다고 모두가 믿는데, 이를 ‘성취지향적 놀이문화’라고 나는 말한다. 어쩌다 한 번 가는 것이니 계획을 꽉 채워 돌아다니는 효율성을 추구한다. 일을 할 때처럼, 그런데 이게 진짜 쉬는 것일까.

한편 쉬어야 할 때 마음 놓고 못 쉬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너무 바쁘고 사는 게 힘든 사람도 있겠지만 돌아보면 놀 수 있는데 성실해서 못 쉬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쉬는 방법을 잃어버린 지 오래라, 시간이 남으면 불안해지고, 불안하니 그 빈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긴장의 고삐를 놓지 못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은영의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는 이런 분들을 위한 책이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학생과 교직원을 진료하고 있다. 한마디로 본인도 머리 좋고 성실하며,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도 최소한 성실함에 있어서 상위 1%인 사람들이다. 매우 특별한 대상을 오래 만나면서 본 특징은 못 쉰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매우 높은 기준을 세우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완벽주의 성향, 강박적으로 자기가 만든 기준과 규칙을 지키려 너무 애를 쓰는 성격, 일에서 오는 성취감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 낮은 자존감의 보상을 오직 일로만 받아본 사람, 바쁘다는 것으로 가족이나 정서적 갈등을 회피하는 사람이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진단한다.

이들은 “뭐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요” “쉬고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요”라고 자주 말한다.

그런 불안으로 휴가를 가도 철저히 계획을 세워 여행을 간다. 쉬는 것도 남에게 평가받고, 잘 놀았다고 인정받아야 자존감이 보상을 받고, 강박적인 완벽주의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일과 쉼, 양방향 모두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니, 결국 만나는 것은 번아웃, 공허감, 외로움이다.

책 안에서 저자 자신이 그런 면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잘 쉬어야겠다고 공부하고 궁리하고, 진료에 적용하면서 모아놓은 내용을 책에 담았다. 이 역시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이라 읽으면서 웃픈 모순이 느껴졌다. 잘 쉬려는 노력의 결과가 책이라니.

진짜 휴식은 휴식 활동을 하면서 긍정적 감정을 느끼고 그 감각이 이후에도 오래 남아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그 휴식은 낭비가 아니라 내게 꼭 필요한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여기자. 남과 비교하고, SNS에 올리기 위한 목적이 아닌 나와 친해지고, 나를 조절하는 능력을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더해서 오래 안정적으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면 금상첨화다.

나는 잘 쉬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이번 연휴에는 집에서 긴 시간을 빈둥거리며 밀린 책을 읽었고, 마감 한참 전에 미리 이 글을 썼다. 잘 쉰 건가?

출처: 문화일보(2025-05-16)